2024. 10. 20.
힙합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러 갔을 때가 언제였을까, 이루펀트의 flower, 화나의 Fanaconda를 보고 어글리 정션에 몇 번 들른 이후로는 간 적이 없다.
해야 할 일이 많아져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적어진 것도 있고,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옛날엔 TV를 안 보는 대신 힙합 음악만 줄기차게 듣고 따라 불렀는데, 요샌 대중 음악, 인디, 게임 음악, 재즈, 뉴에이지까지 듣는다.
그래도 힙합은 여전히 좋아해 OGS라는 프로젝트 팀 소식을 듣고 CD와 공연 티켓을 한번에 구입했지만 공연 날이 되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나는 힙합을 듣기 시작한 때가 약간 늦어 오늘 볼 1세대 래퍼, 특히 주석이나 Side B의 음악은 많이 들어본 바가 없다. 그래서 아는 곡도 별로 없을 텐데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힙합 공연도 오랜만이다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그저께는 클라이밍 모임, 어제는 석촌호수 아뜰리에의 재즈 공연을 다녀온 탓에 몸이 피곤해서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유일한 장점은 정해진 일이 있으면 일단 움직이는 것이다. 사실 저녁에 아뜰리에에선 임용훈X변박요정의 공연이 있어 이 쪽도 가고 싶었는데, 왜 사람 몸은 forking과 merge가 안 되는 것일까.
롤링홀 앞에는 이미 입장 대기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출연진이 출연진이다보니 관객은 대부분 동년배로 보이긴 했지만, 예전부터 이런 자리에 올 때마다 옷차림이든 배경이든 스스로 여기에 안 어울리는 인간이란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어디에도 깊게 빠져들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OGS와 가리온의 곡을 제외하면 역시 대부분 처음 듣는다. 요새 래퍼들의 곡은 당연하고 마스터플랜 시절의 곡들도. 하지만 생각보다 정말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다. 역시 힙합과 뭔가 코드가 맞는 것일까. 녹화한 영상을 몇 번을 돌려 봤는지 모른다. 재즈도 그렇지만 힙합도 실제로 공연장에서 들으면 훨씬 좋은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도파민이 빠지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녁도 안 먹은 상태라 매우 허기졌다. 동네로 돌아와 처음 가 보는 술집에서 끼니를 때우고 기분 좋은 상태로 귀가했다.
맛있는 술과 음식, 마음을 울리는 음악, 문학, 게임, 영상,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세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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