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부상으로 술을 끊은 지 어언 2주, 오랜만에 하는 음주라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예전부터 봐 놨던 남위례역 근처의 초밥집을 예약했다. 매번 오다가다 보던 곳인데, 이런 주택가에서 초밥 코스 요리라니 장사가 잘 될까 싶었는데 꽤 평가가 좋은 것 같다.
캐치테이블로 디너 9만원 코스를 예약하고 시간에 딱 맞춰 들어왔다.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다찌가 거의 꽉 차 있었고 사장님께서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계셨다.
혼자 하셔서 처음엔 내내 바빠 보이셨는데 질문에도 잘 대답해 주시고 중간중간 친절하고 꼼꼼하게 챙겨 주시는 느낌.
매번 오마카세 집에서 720ml짜리 사케를 혼자 시켜 마실 때마다 부담이 되긴 하는데, 내일은 휴일이니까.
원래 미슐랭 3스타 집에서 나온다는 비싼 사케를 마시려 했으나 재고가 없다고 하셨다. 사장님 본인 평으론 맛도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다고. 좀 더 저렴한 시치다 준마이 65를 주문했다.
많이 드라이하고, 사케치곤 맛이 꽉 차 있는 느낌이 들며 상쾌한 향과 뒤로 오래 느껴지는 쓴 맛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냥 츠케모노와 먹기엔 좀 부담스러웠고 나중에 나올 기름진 생선들과는 잘 어울렸다.
츠케모노가 듬뿍. 저 깨 묻힌 죽순 같은 게 맛있었다.
역시 처음으론 차완무시로 속을 달래줘야 한다. 국물에 트러플 오일이 살짝 올라가 있다. 조개, 버섯, 새우가 들어있으며 탄력 있게 씹혔다.
청유자 제스트, 히말라야 소금을 뿌린 광어. 유자가 향긋했고 숙성 정도는 딱 좋아 탄력 있고 고소했다.
시마아지 뱃살 간장절임. 적당히 기름이 올라 맛있다.
참돔 뱃살을 우메보시, 깨와 버무린 것. 적당히 새콤하고 고소해서 입맛을 돋운다.
참돔을 살짝 아부리해서 슈토를 곁들임. 치즈 같은 향이 특이했다.
시마아지 등살. 곁들인 소스가 상큼해서 기름진 생선에 포인트를 준다.
아무리 질이 좋아도 기름진 생선만 계속 먹으면 질릴 때가 있는데, 적절한 시점에 이렇게 환기가 되어 지루할 새가 없다.
시그니쳐. 달달하고 크리미한 소스를 광어로 감쌌고, 겉은 새콤한 간장 젤리 같은 것으로 보인다. 내 입맛엔 소스가 좀 달았고 광어 대신 더 부드러운 참치, 그중 너무 기름지지 않은 등살 정도를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문어튀김은 일식 스타일로 달게 간이 되어 있으며 부드럽게 씹힌다.
전복찜과 내장 소스, 밥. 전복 익힌 정도는 딱 좋았다. 내장 소스는 전혀 비리지 않았고 여쭤보니 버터가 들어갔다고 한다. 새콤한 밥과 같이 먹으면 좀 괜찮긴 했지만 소스가 너무 달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밥은 정말 잘 지으신 듯.
바지락과 도미로 우려낸 국물.
생강 향인지 고추 레몬 향인지 잘 모르겠지만(일반인에게 뭘 바라나) 알싸하게 맵다. 잠깐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간을 깔끔하고 약하게 하신 것 같다.
세토로와 청어 마끼. 참치야 말할 것도 없고, 청어는 비린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맛의 밸런스가 절묘하다.
대파를 참치 뱃살로 싸서 불 향을 입혔다.
참치는 역시 기름지다. 내 입맛엔 좀 더 그을리거나 파를 더 주셔도 좋았을 것 같다.
조금은 생소한 해조류인 모즈쿠, 멍게, 오크라, 게살.
대부분 미끌미끌한 식재들이다. 그래서 정말 일본식이란 느낌이 들었다. 소스는 시큼했다. 오히려 살짝 달았으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해삼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고 난 별로 좋아하진 않는 편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메로 미소야끼. 기름이 잘 올라 이건 딱 술과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마침내 스시가 나오려고 한다. 미소시루.
도미!
참치 속살.
참치 뱃살. 뭔가 안에서 단 맛이 살짝 느껴져서 밸런스가 좋은데 뭔진 모르겠다.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시그니쳐. 겉으로만 봐도 파워풀하다. 관자, 성게알, 단새우. 감칠맛의 황제들.
스시오마카세 집들은 값싼 초밥과 다르게 산미보단 짠맛을 강조하는 듯하다. 여기도 비슷한 결이다.
새우튀김. 소스와 새우의 익힘 정도는 좋았지만 튀김옷 안쪽이 좀 퍽퍽한 느낌이 들었다.
고등어 시메사바 봉초밥. 포토 타임이라 하셔서. 위에 해조류가 올라가 있고 비린내가 하나도 없이 좋았다.
여기서부턴 사진이 없다. 배터리 헬스가 80% 밑으로 떨어진 아이폰은 쓸 것이 못 되며 특히 충전량이 15% 미만으로 떨어졌을 경우 사진을 한 장 찍을 때마다 배터리가 1~3%씩 빠진다. 간신히 켜서 메모만 간단히 했다.
새우를 명란 발라서 구운 것: 이런 조합은 처음인데, 새우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바닷장어: 이거 잘못하면 푸석해지는데 그런 것 없이 정말 부드러웠다.
식사 우동: 이것도 위에서 나온 바지락 도미국물과 비슷하게 간이 약하고 깔끔했다. 개인적으론 좀더 강했으면 했다. 면이 얇은 걸로 보아 이나니와 우동을 쓰시는 듯.
디저트는 딸기 아이스크림. 유지방이 잘 느껴지며 단순하게 달고 맛있다!
모든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 여러 재료가 섞인 음식의 경우 대체로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주가 들어간 요리가 적절한 때 나와 구성이 좋았고, 먹으면서 지루함 없이 즐거웠다. 특히 9만 원에 이렇게 먹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서울은 임대료가 비싸 이곳으로 오셨다던데, 오래 해 주셨으면 좋겠고 몇 달 후에 친구와 한 번 더 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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