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

광기의 저택 도색

juo 2020. 1. 15. 00:41

작년에 서울 보드게임 페스타에 갔다가 신작 광기의 저택을 보았다. 직원 분의 추천사, 무시무시한 가격과 할인율을 보고 이놈을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엘드리치 호러만 구입했다. 이후 온라인에서 기간한정 할인을 하길래 결국 이틀간 광기에 빠져있다가 결국 지르고야 말았다.

사놓고 보니 회색톤의 피규어가 너무 심심한 거다. 그래서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아크릴 물감, 붓을 추가로 구매해서 무작정 도색에 도전해 보았다.

처음엔 다이소에서 구입한 조각 접착제를 사용했다. 피규어 고정에는 별로 쓸만하지 않은 느낌이었고 잘 제거되지 않아서 세척하느라 귀찮았다. 조각 접착제는 방 벽에 포스터 붙일 때 잘 쓰고 있다.

많아 보이는데, 막상 종류로 따지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최근에 나온 크툴루: 죽음마저 죽으리니 정도는 되어야 많다고 할 수 있지. 근데 그건 너무 많아서 사서 도색할 엄두가 안 나더라.

표면 정리를 위해 대학생 때 건담 도색한답시고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스프레이형 화이트 서페이서 1000를 꺼내 뿌려주었다. 냄새가 꽤 나길래 미세먼지 한참 심할 때 구입해서 한 번도 안 쓰고 나간 방독면을 사용했다. 미니멀리즘은 무슨, 역시 뭐든 사 놓으면 쓸모가 있는 법이다.

처음이라 겁이 나서 색을 좀 옅게 해서 여러 번 덧칠을 했다. 진한 색은 이게 되는데 나중에 밝은 계열의 색을 칠하려니 색이 잘 안 먹히기도 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그냥 떡칠을 했다.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 말리고를 반복.

방에 굴러다니는 종이 위에 놓고 말리니까 종이가 울어서 피규어에 들러붙는 불상사가 발생.

그래서 노트 플라스틱 표지를 하나 뽑아 왔다. 원래 저렇게 건조대 용도로만 쓰고 원래대로 노트에 꽂아놓을 생각이었는데, 나중엔 팔레트로 사용하고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어 그냥 버렸다.

그렇게 게으름 속에 몇 달을 걸려 2020년이 되기 전에 완성을 할 수 있었고... 아래와 같이 마무리했다.

웬디 얼굴에 웨더링이 좀 과하게 들어가서 이걸 어떻게 수습할까 하다가, 어차피 직업이 부랑자인 데다 제일 마지막에 칠한 피규어라 귀찮기도 하고 흰색 물감이 거의 동나기도 해서 저대로 놔뒀다.

받침대 부분 검은 칠이 벗겨졌는데 바닥 부분까지 검정색으로 덮었으면 좀 더 깔끔하고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몇 달 째 내 방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지긋지긋한 도구를 모두 정리했으므로 다음 확장팩을 사서 칠하기 전까지 보완할 생각은 없다.

마테오 신부님 파시아(허리띠) 붉은 색 계열로 칠하고 싶었는데, 사제복 자료를 찾아보니 주교나 추기경 정도는 되어야 색이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검정색으로 덮고 모서리만 살짝 갈색으로 칠해 주었다(티는 안 난다).

조사자들은 마감재로 무광 탑코트를 얹어주었다. 역시 건담에 칠하려고 샀다가 서랍에 몇 년째 잠들어있던 녀석이다.

수가 많은데 목걸이나 수염 등 자잘한 부분이 많아 칠하면서 좀 질리기도 했던 분들. 광신도라서 눈 묘사를 생략한 조사자와 다르게 눈은 흰색으로 칠했다.

크리쳐들은 모두 유광 바니쉬로 마무리했는데 수생종은 잘 어울리지만 최소한 인간형은 탑코트를 뿌릴걸 하는 생각이 든다.

흰색으로 덮어버리고 웨더링만 해 주면 끝나니 매우 쉬웠다.

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덧칠을 계속 반복했다. 그런 것 치곤 나름 볼만하게 뽑혔고, 특히 드라이 브러쉬로 표현해준 저 이빨이 마음에 든다.

옷의 웨더링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느정도 깔끔함을 유지해야 하는 조사자들을 칠할 때보다 아예 막 더러운 크리쳐 칠할 때가 즐거웠다.

이 분들은 피규어가 좀 심심하게 나온 것 같다. 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칠하다 보니 검은 로브에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붙어버렸다.

일러스트 상에선 조명으로 인해 퍼렇게만 표현되어 있어서 맘대로 색상을 입혀 보았다. 칠하기도 힘든 인간형 피규어 3체가 모여서 하나의 크리쳐라니, 노력대비 효율이 좋지 않다.

원본 일러스트와 기타 참고 자료를 적절히 참고해서 몸통은 다른 장식 없이 검정색(과 먼지)로 덮였다. 대신 입 안의 색상 배합에 신경을 썼다.

크툴루 스타 스폰. 제일 처음에 칠한 피규어인데 워낙 조형이 잘 나와서 대충 칠해도 멋있다.

사놓고 몇 번 안 돌리면 어쩌지 했는데 의외로 자주 했고 다들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한 판당 3시간 이상은 잡아먹는 게 문제. 다들 슬슬 체력이 딸리기 시작할 나이라 그런지 막판으로 가면서 조사자 상태가 안 좋아질 수록 플레이어 상태도 안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