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크리스마스 독일 음주 여행 7일차: 베를린으로

juo 2024. 4. 25. 00:08

아침 일찍 렌터카 사무소가 여는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아니 사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도 사무실 문이 잠겨 있고 앞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이게 맞나 싶었는데 이내 직원이 도착해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우리가 적절한 시간에 왔구나.

분명 경차로 예약을 했건만, 남아 있는 차가 밴밖에 없다고 한다. 대형 차량을 운전해 본 경험은 없지만 이럴 때 한 번 해 보지, 정 안 되면 J가 해 주겠지 싶어 일단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면허증을 보더니 면허를 딴 지 1년이 되지 않아 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당황스럽다. 국제 면허증에는 당연하게도 국제 면허증 발급일장만 나와 있다. 그리고 국내 면허증에는 재발급일밖에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이제 알았다. 공교롭게도 나랑 J 모두 고등학교 졸업 직후 비슷한 시기에 면허를 땄고 재발급일도 23년 초로 비슷하다.

더 우겨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빠르게 플랜 B를 생각했다. 가블렌츠의 악마의 다리를 보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베를린으로 떠나기로 했다. 불가능한 일에 미련 가져봤자 소용없고 어차피 베를린도 첫 방문이니 볼 게 많다. 망설임 없이 기차역으로 갔다.

베를린은 물가가 좀 비싸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잡았다. 과연 여태 들른 숙소 중 유일하게 3시 이후에나 체크인이 가능했다. 짐 보관도 지하의 유료 락커를 이용해야 한다.

키오스크에서 보관할 시간을 고르게 되어 있었는데 3시간과 24시간밖에 없었다. 우린 4~5시간 정도만 보관하면 되는데... 심지어 키오스크가 앞에 결제하던 사람의 돈을 먹은 것 같다. 우리 뒤에서 대기하던 사람도 그 광경을 보더니 우리가 “먼저 하라”고 양보하는 것도 마다했다. 락커 위나 구석에 그냥 짐을 짱박아둔 사람도 있어 우리도 약간 불안했지만 그렇게 하고 도시를 구경하러 나갔다.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무스타파 야채 케밥을 먹으러 갔다. 일찍 가서 줄이 그렇게 길진 않았으나 그냥 하나하나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J는 되너, 나는 먹기 편해 보이는 뒤림으로 골랐다. 테이블이 없고 근처에 대충 앉아서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속재료는 같다.

세계 3대 케밥이니 뭐니 하는데 그런 건 기준이 없어서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맛이 있는 건 사실이다. 뒤림은 두 명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았는데 양이 적은 내가 꾸역꾸역 90%를 먹어치울 정도로 맛있었다.

크리스마스 기념품 가게인 케테 볼파르트의 베를린 지점으로 갔다. 본점은 휴일이라 못 갔는데 여기도 아기자기한 물건이 많았고 『나홀로 집 2』의 케빈이 된 기분이 약간 느껴졌다.

돌아다니다 보니 성당 옆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었다. 그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은 실컷 봤다고 생각해서 자세히 보진 않았다. 지역별로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맛이 느껴진다.

베를린의 상징 암펠만 스토어에 가서 열쇠고리와 스티커 등의 기념품을 좀 집어왔다. 신호등 모양이 다른 것도 신기했고 그걸 기념품으로 만든 것도 재밌는 아이디어다.

15시 좀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는데 체크인 줄이 문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여기 맛집이었구나. 저렴이 숙소답게 방은 좁고 화장실은 문짝이 부서져 있었다.

이미 많이 돌아다닌 터라 피곤해서 숙소에서 저녁까지 쉬다 다시 나갔다.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갔는데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키스하는 그림 앞에만 셀카를 찍는 사람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를 구경하고 텔레비전 탑 앞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왔다. 대도시답게 번쩍번쩍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글뤼바인 한 잔, 달걀이 들어간 술을 한 잔 먹었다. 도시를 돌며 컵을 모으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일 것 같아 기념품을 잔뜩 샀다.

바로 옆에 있던 레드 타운 홀, 브란덴부르크 문 등의 관광지를 간단히 찍고 버스로 식당에 갔다.

그동안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던 한국인들을 봤다. 교환학생 같아 보였다. 배가 불러 간단히 피자와 커리부어스트 정도만 시켰다. 맥주는 물론 기본이다. 조금 짰지만 그래서 맥주와 먹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숙소는 방음이 안 되어 밖에서 문을 여닫는 끼익 소리가 다 들린다. 안으로는 J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귀마개를 괜히 한 번 써 보고 싶어서 착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