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크리스마스 독일 음주 여행 10일차: 덴마크로

juo 2024. 5. 8. 22:43

덴마크로 이동하는 날이다. 여행 계획을 짤 때 J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슬쩍 끼워 넣었다.

체크아웃하면서 크리스마스 초콜릿과 젤리 세트가 들어 있는 봉투를 하나씩 선물로 받았다. 기분은 좋지만 아마 맛이 좋진 않을 테고 먹기엔 양이 많아 한국에 돌아가면 버려질 것 같다.

아침은 역내 푸드코트에서 대충 먹었다. J는 되너, 나는 신선해 보이는 치즈 샌드위치와 바클라바를 시켰는데 케밥집에서 산 탓인지 속이 반 밖에 들지 않았다. 옆에 사람들이 줄 선 곳에서 살 걸 그랬나 싶다.

이번엔 코펜하겐까지 5시간을 가야 해서 지정 좌석을 예약했는데 올바른 판단이었다. 유일하게 두 명이 붙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가족칸밖에 없어 이 쪽으로 잡았는데 좀 더 넓었다. 칭얼대는 아이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기차는 북쪽으로 계속해 달렸고 동시에 내가 평생 가 본 최고 위도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카드를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 의논하다 이동 경로 검토 후 시티패스만 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나라를 건너가는데 출입국 심사가 필요 없다는 게 신기하다. 여권을 준비하라는 방송이 나오더니 검사도 하지 않았다. 국경에는 뭔가 있을까 하고 창밖을 계속 찍고 있었는데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안 봤으면 국경을 넘은지도 몰랐을 것이다.

기차는 조금 연착되었다. 옆 좌석의 가족들과 인사하고 역으로 성큼 내려갔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뼈대가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호텔에 짐을 놓고 근처 Hooked 식당에서 피시 앤 칩스를 주문했는데 식초 소금이 맛의 포인트가 돼 주었다. 포케는 평범했다. 이 집도 수제 맥주가 들어오는지 맛이 아주 좋았다. 덴마크로 오자마자 물가가 확 오른 것이 체감된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라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을 슬쩍 보고 왕립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이 어쩌다 관광지가 되었을까.

현대적인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친숙한 종이 냄새가 났고 고풍스러웠다. 원숭이섬의 비밀에서나 보던 문서 색인도 보았다. 우리 대학 도서관이 이랬으면 자부심이 생겨 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인 티볼리 파크로 왔다. 어두운 저녁인데도 입장 줄이 꽤 길었다. 입구부터 화려한 조명 조명 조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할 땐 값이 비싸서 입장권만 샀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뭐라도 좀 타 볼까 하고 내부 자판기에서 놀이기구 이용권까지 구매했다. 기구들은 평범한 편이었고 오랜만에 줄을 서 봤다. 생각해 보니 최근엔 사람이 없을 때만 놀이공원에 갔거나 자본력을 이용해 라이트닝 레인 같은 걸 샀는데. 첫 놀이기구에 30분 동안 줄을 서 있었는데 앞에 갑자기 사람들이 돌아 나오면서 고장 났다고 할 때는 허탈감이 느껴졌다.

내부 음식은 비쌌으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고급 식당가는 갈 생각도 들지 않았다. 추워서 글뤼바인이 생각났는데 여기도 마침 글뢰그라고 하는 똑같은 걸 팔고 있었다. 내부에 견과류가 좀 들어 있고 역시 따뜻해서 좋다. 북유럽 국가에 오뎅 포장마차를 들여오면 정말 잘 되지 않을까 싶다.

햄버거 등의 음식을 파는 매대에서 좋은 냄새가 났지만 퀄리티 대비 가격이 좀 부담스러워 와플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다. 딱 관광지 퀄리티의 와플이다.

놀이기구는 3개만 타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놀이공원 곳곳을 꾸민 조명은 보니 사람들이 왜 여긴 밤에 오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여태 본 것 중 가장 귀여운 규모의 분수쇼도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장식품을 사 나왔다. 유로 결제가 가능하긴 한데 동전은 받지 않았고, 거스름돈을 코루나로 주더라.

돌아오는 길에 소시지를 파는 푸드트럭이 보였다. 아까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과 딱 일치하는 가격의 소시지가 있어 이건 운명이다 하고 하나 샀다. 뽀득뽀득 맛있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땡이다.

여행 막바지로 오니 점점 여행의 피로가 금방 온다. 첫날보다 많이 걷지는 않은 것 같은데 힘들다.

누워 있으니 연말이라고 거리에서 웃음소리, 노랫소리, 폭죽소리 등이 들린다. 분위기가 좋다. 한국의 번화가, 그러니까 술집 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