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크리스마스 독일 음주 여행 11일차: 프레데릭스 성, 연말

juo 2024. 5. 17. 23:06

인도, 일본에 이어 해외에서 맞는 세 번째 연말이다. 조식이 무료라 먹으러 갔는데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통 벌집을 먹어 본다. J는 약간 과식을 한 것 같다.

힐레뢰드의 프레데릭스보르 성으로 왔다. 날은 흐렸고 호수에는 새들이 많이 떠 다녔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생선을 하나씩 물고 나오는데, 뷔페가 따로 없다.

성 내부는 사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매우 화려하고 넓었다. 빈 공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벽에 가득 걸린 그림, 장식품과 천장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전시품의 밀도가 아주 높아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나오는 길에 정원을 걸으며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새해 인사를 전했다. 아버지는 감기, 어머니는 검버섯 제거 시술로 집에 틀어박혀 계신다. 연초부터 다망한 집안이다. 동생은 역시나 스노보드를 타러 나가 집에 없었다.

관광지치곤 근처에 점심을 먹을만한 곳이 별로 없어 아무 피자집에 들어갔다. 메뉴가 매우 많았다. 좀 특이한 피자를 먹고 싶었으나 안정적인 맛을 추구하는 J와의 충돌로 가장 기본적인 치즈 피자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던데, 관광객 식당은 절대 아니고 지역 주민들만 찾아가는 그런 식당 같다.

시내로 이동했으나 열려 있는 가게가 거의 없었다. 한국은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대목인데, 문화가 참 다르다. 돌아오는 길에 16시 정각에 폭죽을 터트리는 가족들이 보였다. 한국이 마침 0시긴 했는데, 뭐였을까?

숙소에 들렀다 아까 봐 둔 수제 맥주집에 찾아갔다. 하지만 대문은 차갑게 닫혀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추워서 아까 가는 길에 본 버거집으로 갔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맥주도 적당히 맛있고 버거도 피터 팬보다 괜찮았다. 패티는 촉촉했고 번은 부드럽고 너무 짜지도 않았다.

나쵸까지 야무지게 먹고 대형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돌아가려 했는데 닫혀 있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샀다. 폭죽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어디 광장에 모여서 터트리는지 불꽃은 안 보이고 하늘만 번쩍인다. 마트에서 사람들이 폭죽을 대량으로 사간 게 이 날을 위해서였구나.

시청 광장에 나가고 싶어 맥주를 마시며 때를 봤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냥 방에서 맥주나 더 마시기로 했다. 창밖에 우산도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여행객 입장에서 옷이 젖는 건 신경 쓰이고 감기도 걱정되었다. 만화 『아리아』에서 본 유럽식 연말을 기대했는데.

호텔 카운터에서 각자 맥주를 두 병씩 사 왔는데 하필 내가 “디자인이 예쁘다”라고 고른 한 병이 무알콜 맥주였다. 향은 좋았는데 목으로 넘기자마자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정각이 되기 전에 이걸 먼저 까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최악의 새해가 될 뻔했다. J가 이 모습을 보며 너무 좋아했다.

J가 가져온 육개장 국물에 물을 붓고 24시 정각에 “진짜 맥주”를 따서 건배를 했다. 그 순간 폭죽 소리는 절정에 달아 마치 전쟁터 한복판을 방불케 했다.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육개장과 맥주를 다 마신 후 50분에 잠자리에 들었으며, 폭죽 소리는 1시 반이 되어서야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