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10월(December) 국제국민마라톤

juo 2024. 10. 5. 16:22

친구들이 가끔 달리기 기록을 찍어 올리는 걸 보고 나도 그냥 한 번 해 볼까 하고 러닝을 시작한 지 몇 달째,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10km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동안 속세에선 러닝 크루가 유행이 되었다고. 클라이밍도 유행이고, 난 이제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목요일에 동네에서 10km를 뛴 탓인지(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마라톤 기념품으로 온 이봉주 깔창을 테스트한답시고 토요일에 하루종일 신사동을 걸어 다닌 탓인지 모르겠지만 일요일 오후부터 오른발 바닥이 아파와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하필 마라톤 직전에. 가서 응원이나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약을 먹고 며칠간 얌전히 있자 뛸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아침 5시 반, 평일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초코바를 하나 먹고 출발했다. 마라톤은 고등학생 때(아마 봉사 시간을 받기 위해) 금연 마라톤 5km를 “걸은” 이후로 처음이다.

 

 

반팔을 입고 덜덜 떨면서 출발까지 한 시간 남짓 기다렸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추워서 감기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며칠새 날씨가 이렇게 추워질 줄이야. 준비운동 겸 체온도 올릴 겸 제자리걸음을 하며 서 있으니 발바닥이 점점 아파왔다.

기다림 끝에 출발을 하고 나서는 오히려 더웠다. 발바닥의 통증은 뛰기 시작하니 참을만했다.

J는 잘 달리니 먼저 가게 두고 S 등과 천천히 뛰고 있었는데 커브에서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나. 중간중간 좁은 길에 사람이 너무 몰려 친구들이 어딨는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7분 페이스로 천천히 시작해 조금씩 속도를 올릴 생각이었지만 애플워치가 방전이 되고 말았다. 분명 배터리가 60% 이상 남았을 텐데, 핸드폰 없이 셀룰러로 사용해서 그런가? 애플 놈들이 만드는 물건이 다 그렇지, 이제 애플워치를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무용지물이 된 에어팟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단 주변 사람들 속도에 맞춰 뛰었다.

나야 설렁설렁 뛰니까 별 상관 없지만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에겐 병목 구간이 연속해 있는 정말 최악의 코스였다. 하프 마라톤과 코스가 겹치는 구간도 있었고. 물컵 집는 것도 위험스러워 보였다.

적당히 뛰다 보니 어떻게 10km가 지나갔고 나중에 문자로 온 기록은 56:42였다. 페이스 조절을 못해서 오히려 연습 때보다 빨라졌다. 그리고 내 발은 도로 악화되어 절름발이가 되었다.

메달에 각인을 할 수 있는 얘기가 들어 줄을 서 봤다. 줄은 공원을 가로로 횡단해 있었고, 그대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레이저 각인기 몇 대가 고장이 난 탓에 더욱 느려졌다. 게다가 짐 찾는 줄과 겹쳐서 그야말로 대혼란이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뒤에 서 있던 나와 H는 포기했고, J쪽으로 새치기했던 친구들도(난 탐탁잖게 생각해 동참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적 신뢰를 깎아먹고 더 팍팍한 사회를 만든다) 식당 예약을 총 50분 미루면서까지(역시 민폐라 생각한다) 더 기다렸지만 결국 포기했다.

최근 다들 흑백요리사(내가 암흑요리사라 잘못 부른 이후 다들 그렇게 부르지만)를 재밌게 보고 있어 근처에 있던 반찬 셰프의 마마리 다이닝을 예약했다. 확실히 맛이 괜찮긴 하다.

각인 줄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줄이 엄청 길었고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짐 보관소와 각인 담당 자원봉사자들이 불쌍했다.

우리는 포기하고 한강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쉬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어 무척이나 예뻤다.

집에 돌아와서 모바일 기록지를 보다 10월 마라톤인데 December라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로마력을 쓰는 건가?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하프마라톤에는 Hafe라 쓰여있었다고. 기억에는 남을 것 같다.

제대로 뛴 첫 마라톤인데 여기저기서 최악의 마라톤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참가하는 마라톤은 이것보단 나을 테니 럭키비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