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디제이맥스 미라클 팝업스토어

juo 2024. 5. 18. 00:08

디제이맥스를 언제부터 플레이했는지 돌아보면 역시 첫 시리즈부터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망령이었던 나는 일찍부터 리듬게임의 존재를 알았지만 집 근처에 오락실도 없고 돈도 없어서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BMS의 세계에 살짝 발을 담갔고, 자연스럽게 DJMAX 온라인도 하게 되었다.

PSP로 신작들이 나왔을 때는, 난 게임기가 없었지만, S가 학교에 들고 온 걸 가끔 쉬는 시간에 빌려서 했고 한국 PC 패키지 마지막 작품인 트릴로지까지 소장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뭔가를 깊게 파지는 못하는 인간이라 실력은 “양민”에 그쳤지만 그래도 어쩌다 보니 꾸준히 즐긴 만큼 애착이 있는 게임이다.

그 후로 몇 년간 잊고 지내다가 새 시리즈인 리스펙트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오래 리듬게임에 손을 대지 않고 있어 시큰둥했다.

JY 형 집에서 우연히 플레이하기 전까지는.

실력은 예나 지금이나 처참했지만 그렇다고 줄지도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쳐 보는 노트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확장팩과 클리어 패스 구매도 꼬박꼬박 하는 충성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 게임이야말로 진정 내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최근엔 관련 음반, 굿즈가 하나둘 나오더니 오늘내일은 팝업스토어와 디제잉 공연이 있어 당연히 달력에 표시해 놓았다. 디제잉 공연은 처음이라 굳이 이틀을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표는 토요일 것만 남기고 취소했다. 오늘은 팝업스토어 굿즈만 털러 간다.

오후 반차를 쓰고 혼자 성수동으로 왔다. 정말 취향이 맞는 친구가 없다. (그나마 같이 갈 만한 사람인 JS는 늘 그렇듯 회사에서 구르고 와이프를 보필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번호표를 받았다. 13시 반 정도에 도착했는데 앞에 127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당 1분으로 잡아도 두 시간이다. (실제론 두 시간 반쯤 기다렸다.) 느긋하게 건대입구까지 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삼체』 3권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다 들어갔다. 이 책은 권수가 늘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인원수 제한을 하는 만큼 내부는 쾌적했다. 펜던트를 살지 고민했지만 악세사리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재꼈고, CD, 옷, 굿즈 등을 사 나왔다. 20만 원이면 생각한 것보다 지출이 많진 않은 것 같다.

대기번호가 277번이었는데 디씨를 염탐하다 보니(일베에서 유래한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특정 주제에 대한 실시간 소식을 얻기엔 좋은 곳이다.) 공연 준비 관계로 290번부터는 입장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전 회의가 조금만 더 늦게 끝났으면 내일 오픈런을 해야 할 뻔했다.

근처 카페에 PUNEW 님과 로키 스튜디오 관계자 분들이 모여 있어 사인을 받을 기회였고 받고 싶었지만 극한의 내향인인 나는 손에 들린 굿즈로 만족하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Y를 만나 저녁을 먹고 JS와 접선해 CD를 전달해 주고 집에 들어와서야 공연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기 시작했다. 외이도염을 앓은 이후로 이어폰을 잘 가지고다니지 않는다.

디제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아는 노래들이 나오니 신나서 혼자 거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싯적 힙합 공연에 가서 신나게 흔들고 즐겼던 게 생각난다. 디제잉 공연은 어떻게 즐기는 거지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양일 전부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 내일 절대로 신나게 즐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