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훌쩍 부산으로

juo 2023. 8. 26. 15:50

2023. 8. 13.

14일에 휴가를 쓰면 15일 광복절까지 3일 쉴 수 있다. 3일 동안 가만히 있는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새벽에 충동적으로 부산 여행 계획을 잡았다.

숙소는 위치가 좋고 가장 싼 곳으로. 그 외 갈 곳으로는 눈여겨봤던 오마카세 집과 찜질방, 바닷가 한 곳, 연수가 추천해 준 암장 정도만 정해 놨다. 15일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는 거의 자리가 없어 겨우 점심에 출발하는 입석 하나를 잡았다. 한국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니 뭐니 해도 원할 때 먼 지방까지 오가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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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선 딱히 할 게 없었다. 죠죠 5부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를 보고, 아이패드로 클라이밍 티셔츠 디자인 초안을 완성했고, 자판기에서 초코픽을 하나 사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사 먹는 이것이 어른의 경제력이다. 초콜릿이 차갑게 굳어 과자를 곡괭이처럼 써 파내야 했는데 그래서 초코pick인 건가.

게스트 하우스에 체크인부터 했다. 일박에 약 3만 3천 원 했는데 내가 평생 묵어 본 숙소 중 가장 싼 가격이면서 가장 좁은 곳이었다. 1평은 되나 싶은 방 대부분을 2층침대가 차지하고 있고 캐리어를 온전히 펼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몸만 뉘일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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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출출해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었다. 3천원에 3종류를 선택 가능해 보통, 매운맛, 물떡 하나씩을 골랐다. 어묵은 그냥 그랬고 물떡은 처음 먹어보는데 상상한 맛과 비슷하면서도 짭짤한 간장과 잘 어울려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구름 뒤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고 놀러 나온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았다. 해안가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몇 보였고 포크레인으로 긁어모은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일정 간격을 두고 쌓여 있었다. 이런 곳에 몸을 담그고 싶지는 않다. 역시 바다는 동해가 깨끗하고 좋은 것 같다. 작년에 J와 서핑 갔던 양양 바닷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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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분수 공연이 시작한다길래 자리를 잡았다. 30분 전부터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담당자가 그 자리는 물이 많이 “튄다”고 하길래 튀어 봐야 얼마나 튀겠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빛과 물의 향연을 즐기다 보니 점점 몸이 젖어갔고 급기야 분수 소나기가 내려 물에 푹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외곽으로 도주했다.

숙소 근처로 돌아가 깡통야시장에 들렀다. 일본인이 유난히 많은데 일본 음식도 많이 파는 것이 신기했다. 줄이 그나마 적었던 야채 삽겹쌈, 꼼장어를 포장해 안주를 들고 갈 수 있는 술집에 들어가 맥주와 먹었다. 곰장어는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왠지 부산에 왔으면 먹어줘야 할 것 같다. 옆에 혼자 오신 남자분이 앉았는데 이럴 때마다 생각이 든다. 내가 미국처럼 낯선 사람과 스몰토킹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문화권에서 태어났으면 좀 더 붙임성 있는 성격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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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의 노래방에서 짧게 즐긴 돌아와 씻고 나왔다. 숙소 아랫층의 맥주집은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문을 닫았다. 이럴 알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위층의 공용 테이블에서 마시며 랩탑으로 일을 하려 했는데 이미 의기투합한 남녀 혼성 젊은 인싸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 안에선 식음료를 먹을 없어 조용히 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