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3.
14일에 휴가를 쓰면 15일 광복절까지 3일 쉴 수 있다. 3일 동안 가만히 있는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새벽에 충동적으로 부산 여행 계획을 잡았다.
숙소는 위치가 좋고 가장 싼 곳으로. 그 외 갈 곳으로는 눈여겨봤던 오마카세 집과 찜질방, 바닷가 한 곳, 연수가 추천해 준 암장 정도만 정해 놨다. 15일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는 거의 자리가 없어 겨우 점심에 출발하는 입석 하나를 잡았다. 한국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니 뭐니 해도 원할 때 먼 지방까지 오가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기차 안에선 딱히 할 게 없었다. 죠죠 5부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를 보고, 아이패드로 클라이밍 티셔츠 디자인 초안을 완성했고, 자판기에서 초코픽을 하나 사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사 먹는 이것이 어른의 경제력이다. 초콜릿이 차갑게 굳어 과자를 곡괭이처럼 써 파내야 했는데 그래서 초코pick인 건가.
게스트 하우스에 체크인부터 했다. 일박에 약 3만 3천 원 했는데 내가 평생 묵어 본 숙소 중 가장 싼 가격이면서 가장 좁은 곳이었다. 1평은 되나 싶은 방 대부분을 2층침대가 차지하고 있고 캐리어를 온전히 펼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몸만 뉘일 수 있는 곳이었다.
약간 출출해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었다. 3천원에 3종류를 선택 가능해 보통, 매운맛, 물떡 하나씩을 골랐다. 어묵은 그냥 그랬고 물떡은 처음 먹어보는데 상상한 맛과 비슷하면서도 짭짤한 간장과 잘 어울려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구름 뒤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고 놀러 나온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았다. 해안가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몇 보였고 포크레인으로 긁어모은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일정 간격을 두고 쌓여 있었다. 이런 곳에 몸을 담그고 싶지는 않다. 역시 바다는 동해가 깨끗하고 좋은 것 같다. 작년에 J와 서핑 갔던 양양 바닷물이 생각났다.
낙조분수 공연이 시작한다길래 자리를 잡았다. 30분 전부터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담당자가 그 자리는 물이 많이 “튄다”고 하길래 튀어 봐야 얼마나 튀겠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빛과 물의 향연을 즐기다 보니 점점 몸이 젖어갔고 급기야 분수 소나기가 내려 물에 푹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외곽으로 도주했다.
숙소 근처로 돌아가 깡통야시장에 들렀다. 일본인이 유난히 많은데 일본 음식도 많이 파는 것이 신기했다. 줄이 그나마 적었던 야채 삽겹쌈, 꼼장어를 포장해 안주를 들고 갈 수 있는 술집에 들어가 맥주와 먹었다. 곰장어는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왠지 부산에 왔으면 먹어줘야 할 것 같다. 옆에 혼자 오신 남자분이 앉았는데 이럴 때마다 생각이 든다. 내가 미국처럼 낯선 사람과 스몰토킹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문화권에서 태어났으면 좀 더 붙임성 있는 성격이 되었을까.
숙소 근처의 노래방에서 짧게 즐긴 후 돌아와 씻고 나왔다. 숙소 아랫층의 맥주집은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문을 닫았다. 이럴 줄 알고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위층의 공용 테이블에서 마시며 랩탑으로 할 일을 하려 했는데 이미 의기투합한 남녀 혼성 젊은 인싸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 방 안에선 식음료를 먹을 수 없어 조용히 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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