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6.
15시 좀 넘어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복도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봤다. 블라인드를 하루종일 쳐 놔서 몰랐는데 오늘은 날씨가 꽤 좋다. 평일에도 이틀 빼면 재택근무라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 주말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보단 산책이라도 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이 근처는 빌딩으로 시야가 가로막힌 좁은 골목에 흡연자와 차들이 가득해 기분 좋게 돌아다닐 만한 장소가 못 된다. 근린공원이라고 있는 것은 동네 언덕에 흔한 운동기구를 몇 개 가져다놓은 수준이다. 지하철을 타고 좀 가면 선릉과 정릉이 있는데 볼거리는 없었던 것 같다. 강북으로 넘어가거나 전시관을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맛집이 있는 곳 주변을 대충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기도 뭐하다. 혼밥이 가능한 맛집이란 내가 생각한 “오늘 좀 근사한 것을 먹어볼까”의 “근사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럴 땐 미국 출장을 갔을 때가 그립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먹어도 눈치를 주지 않았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30분간의 고민 끝에 무작정 한강공원 잠원지구로 향했다. 서울에 전입해 온지 몇 달이 지났는데 한강을 가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남대교 부근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산책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갔다. 강 가장자리가 얼어 있었다. 주말치곤 사람이 별로 없는 편 같다. 요샌 한강에서 술도 못 마시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풍경이 계속되고 더 볼 것이 없어 보여 근처의 가로수길로 넘어갔다. 처음 와 봤는데 대부분이 옷가게였다. 애플 A/S를 받지 않는 이상 올 일이 없을 것 같다. 공실이 되어 버린 가게도 군데군데 보였다. 실망한 마음으로 신사역까지 걸어갔다. 큰길가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곳을 가 볼 마음도 들지 않아서 그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천에서 살던 동안 서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환상은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다. 가끔 놀러오는 건 몰라도 거주 목적이라면 담배와 차로 가득한 이 건물 숲보다는 다른 한적한 곳을 찾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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