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전자책과 종이책

juo 2022. 1. 31. 13:58

온전히 내 소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살다 보면 물건 하나를 집에 들이는 데에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언젠간 이사를 가야 할 순간이 올 테고 그 때 모든 짐을 빼기 위한 노력과 비용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본가에는 수많은 내 소유물이 남아 있다.

그 물건 중 책에 관한 얘기를 해 보자. 독서는 생각외로 부동산이 필요한 취미이다. 책은 무겁고 부피를 차지해 옮기기 번거롭다. 때문에 상기한 이유로 선뜻 사기가 어렵다. 본가의 책꽂이는 한 번 솎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책 위에 책을 쌓아놓은 과포화 상태인데,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이처럼 종이책을 사 읽었다간 나는 지금의 매트리스 대신 책 위에서 잠을 자야 할 것이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전자책을 사기 시작했다. 왜 최후의 방법이냐 하면 이는 여러 까닭이 있는데,

  1. 종이책에 비해 예쁘지 않다. 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합본이나 나쓰메 소세키를 단순히 ‘책이 예뻐서’ 구입해 읽기 시작했을 정도로 표지 디자인을 중시한다. 책의 내용이 같다면 돈을 더 내도 양장본을 선택할 것이다.
  2. 한 플랫폼에서 산 책은 다른 플랫폼에서 보거나 로컬에 백업할 수 없다. 지금 쓰는 플랫폼의 뷰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찾는 책이 해당 플랫폼에 없다거나, 플랫폼이 망했다거나 해도 쉽사리 갈아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구글 북스에 원하는 책이 없어 리디북스로 갈아탔고 내가 산 책이 이렇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걸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
  3. 종이책에 비해 발매가 느리다. 신간을 몇 달이나 기다려서 봐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책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발매 일정이라도 정확히 나오면 모를까, 발매될지 되지 않을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즉 내게 부동산만 있었다면 100권 이상씩 나오는 만화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종이책을 샀을 거란 얘기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하지 못하고 종이책을 사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사모은 종이책들을 오피스텔의 작은 책꽂이에 마냥 쌓아놓을 수는 없으므로 다 읽은 책은 본가에 가져다놓고 있다. 설에 본가로 가기 전에 집중해서 읽으면 끝낼 수 있을 듯한 책 두 권이 있어 카페로 향했다. 은은하고 색온도가 높은 조명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마시진 않을 거지만) 와인과 맥주도 파는 점이 마음에 든다.

카페의 화이트 노이즈가 제공하는 집중력으로 한 권을 끝내고 잠깐 쉴 겸 쓴 글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음 책을 계속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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