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
설을 맞아 본가로 내려왔다. 사실 이 곳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다. 보통은 OTT로 못 봤던 영화를 보지만 이렇게 긴 연휴는 ‘우선순위가 낮지만 하고 싶었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해 볼 좋은 기회다. 그동안 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서 미뤄놨지만 언젠가 배우고 싶었던 프로그래밍 언어인 Rust를 조금 공부해 봤다.
친구들도 연휴를 심심하게 보내고 있는지 단체 대화방에서 알림이 심심찮게 울려댔다. 어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라이언 모양 스노우볼 메이커를 들고 눈밭을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보라, 이것이 동심 가득한 한국의 30대 아저씨다. 이렇게 눈이 올 줄 알았으면 오리 스노우볼 메이커를 오피스텔에 가져다놓지 않을 걸 그랬다.
나는 예의 ‘차 안에서 영화 보기’ 2회차 모임을 갖게 되었다. 차 주인 J를 만나 Y를 픽업하러 가면서 잡담을 늘어놓다 이런 말을 들었다. “네가 고등학생 때 그 사이트를 만들어서 우리 5명이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모임의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들었던 웹 사이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료 호스팅에 제로보드, 가가라이브 채팅, 나레보드(당시 오타쿠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글을 쓰면 랜덤으로 작성자의 직업과 소설 비슷한 나레이션을 넣어 주는 게시판), 비툴 등을 올리고 레이아웃만 제작한 정도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과 시덥잖은 글을 쓰거나 재미있는 자료를 퍼나르며 노는 공간이었다. 언젠가 마사토끼님이 가입 신청을 하신 걸 보고 깜짝 놀라 메일을 썼던 기억이 난다. (본인의 만화를 검색하다 들어오신 것 같지만 친구 한정이라 안타깝게도 가입 승인은 해 드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뿔뿔이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대학생이 되면서 주로 생활하는 지역도 달라졌지만, 스마트폰이 나오고 카카오톡이 대중화될 때까지 그 사이트에 모여 놀면서 우정을 유지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평생을 볼 듯 친했던 친구들도 생활하는 공간이 달라지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우리는 개인 핸드폰도, 모여서 다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결국 지금은 같은 동네에 계속 살던 친구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연락처조차 모르는 타인이 되어버렸다.
별 생각 없이 재미로 만들었던 그 사이트가 우리를 지금껏 연결시켜 준 매개체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과의 소통이 매우 쉬워진 지금, 얼어붙어 있는 많은 단톡방을 보면 사이트는 그저 수단이었을 뿐이고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싶다는 각자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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