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자취요리 스타터 키트

juo 2022. 2. 5. 00:17

2022. 2. 3.

설 연휴에 집을 오래 비우게 될 것이 정해지자마자 간당간당한 식재료는 모두 사용하거나 다듬어 얼렸다. 그리고 본가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만 먹었다.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집으로 돌아와 빈 냉장고를 보자 내일은 뭘 해먹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갑자기 밥 짓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떠올려보면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밥을 해 먹겠어”라 생각해서 조미료나 향신료 정도만 가져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이것저것 준비해 주신 걸 거절하긴 뭐해서 결국 다 받아 왔다. 기억나는 대로 써 보자면 얼린 대파, 쪽파, 간마늘, 고추, 애호박, 표고. 그리고 쌀, 된장, 고추장, 간장 3종, 다시포리, 배추김치, 파김치, 깻잎, 멸치볶음. 결국 버리게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다 써서 몇 번이고 다시 사놓고 있다.

처음엔 받은 재료를 소비해야 하니 일단 밥을 짓고 봤다. 이왕 먹는 거 반찬이 다양하면 좋겠다 싶어서 주어진 범위 내에서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해 봤다. 그러다 식재료를 하나둘 늘리게 되었고 식재가 상하기 전에 소비해야 하므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찾아보곤 다시 새로운 요리를 하게 된다.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것은 일종의 요리 스타터 키트였고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여지껏 한식을 해 본적이 거의 없지만 평생 어머니가 해 준 요리를 먹고 자라서 그런지 내가 지향하는 맛이나 주로 하는 요리, 또는 그 바리에이션은 대부분 어머니가 해 주신 것이었다. 백종원 선생님께도 많이 배우고 있지만 말이다.

본가에선 거의 집밥 아니면 배달음식을 많이 먹었다. 특별한 날에는 식재료를 사와 이것저것 하기도 했지만 평소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더 요리를 안 하게 된다. 요리의 시작은 내가 무슨 재료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부터다.

어젯밤에 주문한 식재가 오늘 점심에 도착했고 그것들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자 당분간 먹을 메뉴가 금방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샌 일하면서 요리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혹시 프로그래밍보다는 주부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 내일 점심: 잡곡밥, 연어 스테이크(남은 연어는 사이쿄야키 준비), 비엔나 소시지 구이, 로메인, 김치, 깻잎, 멸치볶음
  • 내일 저녁: 막걸리 배송 오면 김치전. 안 오면 볶음밥
  • 모레 점심: 빵, 라페, 연어 시저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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