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0.
살면서 딱히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좌우명을 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때그때 생각해서 내 가치관에 따른 결정을 내릴 뿐이었다.
그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소하게는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놓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어제의 대선 투표까지.
생각해 보면 선택의 기조는 늘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을 한다. 좀 힘들더라도, 양심을 버리고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한둘 있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마음 편히 앉아 갈 수 있다면 서 있을 수 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내가 이뤄온 것이 온전히 내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기꺼이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돌고 돌아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알려 하고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만연한 혐오에 몸을 맡기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옳은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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