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8.
25일 금요일은 아버지 환갑이었다. 덕분에 회사에서 이틀간의 휴가를 지급받아 오늘까지 쉬었다. 당일에는 어머니와 풍선을 불어 거실 벽에 장식하고, 동생이 준비해 온 케이크도 잘라 먹고, 와인도 따면서 생신을 축하해드렸다.
아버지 선물을 뭐로 해 드릴지 결정하기는 매번 어렵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명품인데, 당신은 브랜드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으시지만 몇 년 전 페라가모 벨트와 버버리 지갑을 드리자 “친구들이 알아본다”는 점에서 좋아하시더라. 같은 걸 드리긴 뭐해서 남들이 잘 알아볼 수 있는 다른 물건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시계가 떠올랐다. 걸리적거린다고 시계를 안 차시는 분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한 건 취미용품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을 해 돈을 버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시는 워커홀릭이라 특별한 취미가 없다. 최근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는 하지만 일 때문에 칠 시간이 안 난다고.
요샌 돈이 최고의 선물이라지만 이것도 뭐한게, 일단 아버지가 나보다 훨씬 수입이 많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작년 어버이날에 소박하게나마 현금을 드려 봤는데 돌고 돌아 결국엔 내게 그대로 입금이 되는 일을 경험한 이후로 현금은 아직 별 의미가 없는 선물로 느껴진다.
원래는 환갑 때 일주일 정도 미국 여행을 갔다 올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두 허사가 되었다. 국내여행이라도 갈까 하던 와중 J가 해랑열차라는 것을 알려줬다. 돈만 내면 교통수단, 식사, 숙박을 모두 알아서 해결해주는 훌륭한 상품이었다! 기대에 차 예약을 하러 사이트에 들어가보자 환갑 당일날만 매진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속으로 잠시 원망을 쏟아낸 후 그 전 주에 예약을 잡았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 확산세로 2022년 전면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고, 그냥 가족끼리 여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어머니의 희망사항이다.
바로 호텔을 찾아봤지만 그 지역에서 가장 좋다는 소노캄은 벌써부터 방이 없었고 베네치아도 마찬가지. 유탑 마리나로 갔는데 조식 뷔페를 제외하곤 썩 괜찮았다. 우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소노캄 호텔 건물이 예뻤다. 스포츠 홀덤 펍에서는 블랙잭을 했는데, 딜러가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어려움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합석한 커플은 빠르게 다 잃고 나서도 우리 가족이 게임하는 것을 재미있게 구경하시더라. 슬슬 마감 시간이 되어가 연속으로 올인을 해 봤다. 처음은 적당히, 두 번째는 블랙잭으로 크게 먹었지만 세 번째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밤에는 호텔 내 포차식당에서 해물짬뽕을 테이크아웃해 방에서 술과 먹었다.
버스커버스커 노래로 뜬 것 말고는 볼 것 없는 동네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노래 덕분에 관광객이 좀 와선지 이틀간 느긋하게 보낼 정도로는 즐길거리가 소소하게 있었다. 해변과 둘레길 산책, 길거리 음식, 모터보트, 예쁜 카페 등. 개인적으론 크루즈를 타고 야경과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코스가 제일 좋았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불꽃이 아낌없이 터졌다. 하지만 너무 밝아 “망한 불꽃놀이 사진 컬렉션"에 추가할 법한 사진이 찍혔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오늘 점심 좀 안 되어 일어났고 아빠와 동생은 이미 출근했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먹은 후 내 짐과 여수에서 사온 와인 두 병을 바리바리 싸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서인지 온몸이 쑤셔서 암체어에서 좀 퍼져 있었다. 오늘까지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정말 내일은 앓아누웠을 것이다.
마침 배송된 식재료로 고등어조림을 해 먹은 후 기계적으로 설거지와 빨래까지 끝내고 여행 사진 편집을 시작하려니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친구들에게 여행 간 것 자랑했다, 친구들끼리는 안 갔을 곳도 가 보고 못 해볼 경험도 해 볼 수 있어서 고맙다, 나이가 들면 건강은 당연히 나빠지는거니까 큰 걱정 말고 너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라, 뭐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이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말로 들으니까 조금 감동이다.
언젠간 반드시 이번에 못 간 미국 여행을 데려다드리고 싶다. 이건 꼭 기념일 때문만은 아니고 내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언젠간 꼭 이룰 것이다. 빨리 사진 정리를 마치고 공유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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