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9.
휴일이라 느즈막히 일어났다. 원래 친구들과 아침 일찍 관악산에 갈 예정이었지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취소했는데 결국 비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해물순두부찌개를 처음으로 해 봤는데 역시 사먹는 것보다는 맛이 덜했다. 좀더 자극적으로 맵고 짜게 만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미국 출장 중 네이퍼빌에서 먹은 해물순두부가 아직도 내 기억 속 최고의 순두부찌개다. 역시 큰 뚝배기에 해물을 아끼지 말고 넣어야 하는 것인지.
기온을 확인해 보니 20도를 넘기고 있었다. 여름 옷을 꺼내고 겨울 옷은 집어넣거나 세탁을 맡겼다. 하는 김에 이불도 걷어낸 후 같이 세탁소로 들고 갔다. 코인 빨래방은 아직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이용 방법을 몰라 혼자 가기가 좀 망설여진다.
창문을 열자 포근한 공기가 들어와 기분이 좋았다. 블라인드를 걷고 “나른한 오후”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평소보다 꼼꼼하게 청소를 했다. 이불을 치운 김에 매트리스도 접어다 구석에 놓고 바닥을 닦았다. 매트는 항상 제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이 아래로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들어가는지.
청소를 끝내자 땀이 조금 나서 샤워와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이쯤 되자 벌써 오후 느즈막한 시각이 되었다. 저녁에는 G가 잠깐 놀러오기로 했고 나도 남은 시간은 보드게임용 피규어 도색을 마저 할까 했는데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MKS의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봤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세탁기가 오늘의 두 번째 빨래를 마치자마자 홍대로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뽀송뽀송해 발걸음이 가벼웠다. 저녁을 먹기 위해 예전에 봐 둔 일본 가정식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혼자 대기줄에 서 있다 보니 뻘쭘했지만 금방 차례가 왔고 내부에는 1인석도 있었다. 배부르게 먹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져 걸음을 서둘러 클럽에반스로 향했다.
디저트 겸 달콤한 말리부 베이 브리즈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했다. 늘 그렇듯 이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공기가 빈틈없이 소리로 가득차면서 마치 환각 상태에 빠지는 듯하다. 앨범을 자주 내는 팀이 아니라서 올 때마다 셋리스트가 거의 비슷하지만 재즈의 특성상 즉흥연주가 많아 언제 들어도 새로운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특유의 어색한 멘트가 오늘은 꽁트에 가까워져 평소보다 재밌었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에 젖어 합정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 양쪽으로 벚꽃이 만개한 모습이 예뻤다. 각자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여러 술집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꽉 차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니 나도 같이 즐거워졌다.
고3 수능을 보고 최종 합격했던 대학 중에는 홍대도 있었다. 지금의 모교 대신 이곳으로 왔으면 대학 생활이 좀더 즐거웠을까? 대학생 시절, 특히 3학년부터는 수업을 듣고 나면 학생식당에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도서관 폐장 시간까지 열람실에서 공부나 과제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모교는 주변 상권이 발달했고 물가가 쌌지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가게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 회식이 아니면 굳이 이 거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공연장 같은 것도 물론 없었고.
요샌 영업제한이 24시로 완화되었다. 나도 다시 저렇게 멋진 장소에서 친구들과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하지만 몇 년간 우리도 많은 것이 바뀌었고, 아무때나 아무 일 없이 모이자고 하기엔 이제 다들 각자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저 사이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 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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