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망한 어버이날

juo 2022. 5. 10. 00:54

2022. 5. 8.

어제 S와 보드게임페스타에 놀러가서 스스로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을 잔뜩 샀다. 박스는 뜯지 못한 채 바로 아버지 회사로 가 새 컴퓨터를 조립해 드렸다. 저녁에 하루 이른 어버이날 축하 파티를 하고 오늘 점심쯤 서울로 돌아와 쉬면서 개인적으로 쌓인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으나, 동생이 친구들과 놀다 새벽에 들어온다고 해서 파티는 오늘 하는 걸로 되었다. 어떻게 매주 토요일마다 저렇게 놀 수 있는지 부럽기도 하다.

부모님은 일요일마다 친구분들과 밭일을 하고 저녁까지 놀다 들어오시기 때문에 어버이날 축하는 밤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어버이날이니 나도 귀가 시간을 늦추고 며칠간 잠을 줄이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 회사 컴퓨터의 마무리 설정을 했다. 본가로 먼저 가 있을까 했으나 부모님이 밭에 근사한 하우스를 하나 지어놨다고 해서 사전답사도 할 겸 따라갔다. 언젠가 나도 친구들과 놀러와야 할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가 농작물에 물을 주고 하는 사이 친구분들 부부가 속속 도착했다. 하얀 털이 북실북실한 강아지 “밤이”를 데려온 분이 있었는데 사람을 잘 따르고 귀여웠다. 나는 옷이 더러워지면 곤란해서 본격적인 밭일은 하지 않았지만 상추 따는 일은 거들었다. 저녁이 되어 막걸리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나중을 위해 어떤 물건이 어디 배치되어 있는지 관찰했다. 예의 소개팅과 결혼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동안 숱하게 나온 결혼하란 얘기를 한 귀로 듣지도 않은 짬이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도중 동생으로부터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 왔다. 저녁인데 언제 집에 오냐고 묻는 것 같았다. 늦게 돌아가니까 저녁은 알아서 먹으라고 했더니 약간 삐진 것 같다고 한다. 7시 좀 넘어서 친구분들도 돌아가시고 우리도 정리 후 집에 도착하자 8시가 좀 안 됐다. 동생은 토라진 채 혼자 카레를 배달시켜 먹고 있었고 아버지가 달래자 눈물을 흘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제딴엔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기껏 준비했는데 혼자 저녁을 먹게 되어 서운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건 본인의 실책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주 일요일마다 부모님이 친구분들과 모여 밭일을 하고 저녁을 드시고 온다는 사실은 같이 사는 동생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는지. 여기에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내 처지까지 생각했다면 어제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다 오는 대신 파티를 했어야 한다.

뭐 이런 생각은 이렇게 일기장에나 쓰지 면전에서 할 수는 없다. 결국 어버이날 축하는 물건너갔고 나는 우산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정리를 끝내자 몸은 피로하고 시간은 자정이 다 되었다. 요즈음 주말이 끝날 때마다 살아갈 의욕이 바닥을 치는데 오늘은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가라앉았다. 술을 한 잔 더 할까 했지만 구입한 보드게임 펀칭타일을 뜯는 것으로 대신했다.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휴가  (0) 2022.05.19
처음으로 혼자 등산한 날  (0) 2022.05.17
소개팅 잡힘당함  (0) 2022.05.09
레고랜드,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  (0) 2022.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