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 소개팅

juo 2022. 6. 5. 02:40

2022. 6. 4.

오늘이 그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잡힌 소개팅 날이다. 2022년에도 이런 건 남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암묵의 규칙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그 규칙에 동의한 적도 의욕도 없어 힘들었다. 하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상대 여성 분께는 죄가 없으니 최소한의 매너는 지키고 싶었다.

장소는 팬데믹 전에 파판 부대원들과 갔었던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정했다. 음식 맛도 가게 분위기도 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이라 늦잠을 잘 것을 감안해 시간은 2시로 정했지만 배가 점점 고파오기 시작하자 좀 더 일찍 잡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가게 앞이 공사중이라 조금 시끄러웠다. 상대 분은 약간 늦으셨고 메뉴를 주문한 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상대가 대화를 잘 받아 주셨던 덕도 있겠지만, 나도 옛날 같았으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전혀 몰랐을 텐데. 그동안 내가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식사 후 근처의 아무 카페로 이동해 적당히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첫 눈에 반했다’ 같은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 사람들이 소개팅으로 뭘 얻고 싶은 걸까 옛날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처음 해 본 소개팅은 완벽히 생각한 대로였다.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밌게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지만 이 사람과 굳이 사귀어야 할 이유는 없는. 아마 상대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J가 “가랑비 젖듯 사랑하는 거지”라고 말했지만 그런 건 짝꿍을 갖고 싶은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말이고, 애초에 생각이 없다면 수고스럽게 그 비를 맞고 있을 필요는 없다.

거절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스러웠다. 솔직하게 “사실 제가 애인을 만날 생각이 없어서…”라고 할까 했지만 ‘그럼 이 자식은 대체 왜 나온 거지?’라고 생각할까봐 평범하고 무난한 거절 멘트 “좋은 분이지만 연애상대로는 생각되지 않는다”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한 고비 넘겼다. 한 번 경험해 봤으니 앞으로의 소개팅은 미연에 차단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다음주에 여행을 가서 친구들에게 풀 썰이라도 좀 있었는지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지만 딱히 없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소개팅이란 것에서 나올 만한 썰이 있긴 한지, 친구들이 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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