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멍게가 되고 싶다

juo 2022. 6. 15. 00:00

2022. 6. 10.

누군가에겐 꿈인 직장도 막상 안에서 보면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정에 치이고. 삐걱대며 굴러가고. 과거의 일이 미래에도 나를 괴롭히고.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여유가 모자라 개인 시간에 공부하고. 그 와중에 나만 뒤쳐져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것 같고. 매번 실수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은퇴할 때까지 이런 일들을 반복해 겪으며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 책과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글을 통해 본 개발자라는 직업은 멋져 보였다. 그들은 힘을 합쳐 새로운 것을 배워 무언가를 만들거나 문제를 멋지게 해결한 후 깔끔하게 정리된 글을 써 지식을 공유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복잡하고 그만큼 해결하는 방법 또한 지저분한 데다 완벽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때론 방대한 요구사항이 얽히고설켜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서로의 방법론에 동의하지 못할 때도 많으며 현실적인 이유로 새로운 기술은 도입할 수 없으며 낡은 것들은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회사에서 얻은 지식은 회사 내부 자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보통 공개적으로 게시할 수 없다.

옛날에는 좋은 글을 게시하는 개발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글들은 감사히 읽고 있지만 지금의 내가 느끼기엔 그들은 자기계발서 속 사람들 같은, 나랑은 거리가 먼 존재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일을 내가 만족할 만큼 잘 해내기엔 아는 것도 적고 똑똑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다. 이렇게 이도저도 못할 바엔 뇌를 녹이고 멍게가 되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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