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서울에서의 문화생활

juo 2022. 7. 13. 01:39

2022. 7. 3.

『탑건: 매버릭』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아이맥스 영화는 서울에선 괜찮은 자리를 잡기가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번엔 시간이 이르긴 하지만 자리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예전에 용산 아이맥스관 A열에서 『듄』을 본 적이 있다. CGV는 양심이 있으면 앞 3개 열은 정가에 판매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걸 보기 위해 어제 전작을 유튜브 뮤비에서 결제해 봤다. 나는 10분 요약이나 줄거리 따위를 찾아보지 않는다. 작품은 작품 그대로를 온전히 즐겨야 작가의 의도에 따른 올바른 감상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영화고 스토리도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OST와 그 시대 특유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젊은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을 보니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영화관에 조금 일찍 도착해 칠리 핫도그로 아침을 때운 후 상영관에 들어갔다. 이번 편도 OST와 영상미가 좋았고 나이를 먹어서도 잘생기고 멋진 매버릭의 활약이 인상깊었다. 비행 장면도 예전에 『에이스 컴뱃 7』을 플레이한 적이 있어 좀더 이입하며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마지막 장면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었다.

왕십리까지 나온 김에 예전에 저장해 두었던 맛집인 춘향미엔을 찾아갔다.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서 걸어가는 동안 땀이 줄줄 났다. 더워서 냉면을 먹을까 했지만 처음 방문한 가게에선 역시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봐야 한다는 주의라 온면과 만두를 주문했다. 만두는 맛있었지만 인상적이진 않았다. 온면은 처음 먹어보는데 쫄면을 따뜻한 국물에 먹는다는 점이 신선했으며 국물이 칼칼하고 풍부한 맛이었다. 다음에 또 왕십리로 영화를 보러 온다면 재방문해 다른 메뉴를 먹어봐야겠다.

서울에 살게 되면서 ‘근처에 전시관도 많은데 문화생활을 자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왕 나왔으니 실천에 옮길 좋은 기회라 여겨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상설 전시만 보려 했지만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이라는 특별전시가 현장 발권이 가능해 5시 표를 끊었다.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상설 전시를 1층부터 관람했다. 풍요를 바라고 만들었다는 고대의 여자 몸 조각을 보자 ‘그런 거창한 의미는 없고 그냥 덕질하려고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툴루 일러스트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를 보면서는 ‘역시 신화생물은 무시무시하게 묘사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에 비해서 감상이라는 것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천천히 둘러봤는데 2시간 동안 1층을 채 다 보지 못했다. 이런 전시가 무료라니 감개무량하다. 시간이 날 때 또 와서 꼭데기 층까지 모두 관람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고려까지만 보고 시간이 되어 특별전을 보러 갔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는 작품은 몇 있었다. 홍옥처럼 빨간 도자기나 시원하게 뻗은 난초 그림, 커다란 추상화 등. 하지만 다 보고 든 생각은 ‘역시 부자는 수집의 규모도 다르구나, 소형 전시관 하나를 채울 만한 개인의 수집품이라니’다. 나는 부동산이 없다 보니 조그마한 장식품이나 피규어를 모으는 것조차 부담스러운데 말이다.

더운 날씨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맥주가 땡겼다. 혼술은 줄이기로 했지만 필요할 때는 마실 생각이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계단에 앉아서 조금 쉬다가 이태원으로 이동했다. 옛날에 왔을 땐 이태원 거리가 정말 멋져 보였는데 이젠 서울에서 살아서 환상이 사라진 건지 부평 거리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혼술할 수 있는 가게가 있다는 점에선 이 곳이 더 좋다. 크래프트한스에서 적당히 맥주 두 잔과 사이드 안주 두 개를 먹었다. 생각보다 값이 쌌다.

이태원은 노래방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강남역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임영웅을 내게 영업하면서 빌려주신 CD를 최근 들었는데 그중 맘에 들어서 따로 연습했던 노래들을 불러 봤다. 옛날 사람의 생각같지만 역시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앨범을 사서 트랙 번호 순서대로 들어야 한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고역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충실하게 하루를 보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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