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스테이크와 추억의 감자 크로켓

juo 2022. 8. 11. 00:04

2022. 7. 30.

J네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정오가 넘어서 일어났다. 샤또 딸보 등의 와인으로 시작해 코인 노래방에 다녀와 위스키로 마무리하는 완벽한 코스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 식품 코너에 들러 스테이크용 안심과 타임, 감자 등을 샀다. 원래 어제 저녁에 해 먹을 생각이었지만 어제의 술 번개로 하루 미뤄진 것이다. 백화점을 나오자마자 버터 사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 편의점까지 들렀다. 구입 목록을 적어놔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스테이크를 직접 구워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의미로 매쉬드 포테이토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감자가 주먹만해 삶는 데에도 한 세월이 걸렸다. 맨손으로 포슬포슬한 감자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몇 번 데었다. 한 덩이만 했는데도 예상한 양의 두 배가 나왔고 우선 반만 접시에 덜었다.

넉넉히 두른 올리브유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튀기듯이 구워야 겉이 바삭해진다고 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점점 검게 변하는 표면을 보자 뭔가 제대로 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좁은 주방 사방팔방에 기름이 튀는 모습을 보고 그냥 다음부터는 밖에서 사먹기로 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 집에서 해 먹는 게 별로 싸지도 않다.

레스팅하는 동안 야채를 구웠다. 아까 백화점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살까 했으나 지금 아니면 먹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집에 있는 양송이, 대파, 흰다리새우, 꽈리고추, 양파로 가니쉬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여수에서 사 온 관광지 와인으로 스테이크 소스를 시도해 봤지만 산미가 너무 강해 싱크대에 양보했다.

안심 한 덩이를 살 땐 작아 보였지만 구워진 모습을 보니 양은 충분할 것 같았다. 기대와 함께 스테이크를 썰어 봤는데 레어에 가깝게 익은 단면을 본 후 다시 팬 앞으로 갔다. 굽는 시간을 알아볼 걸 그랬다. 간도 부족했던 것 같아 소금 후추를 과감하게 뿌려주고 몇 분 더 구웠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미디엄 레어가 완성되었고 맛도 괜찮았다.

빈 접시와 탄산수 병을 앞에 두고 이제 남은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해 봤다. 그냥 삶은 감자를 전부 섞어서 크로켓을 하기로 했다. 이것도 직접 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만드는 것을 도운 적은 많아 과정은 머릿속에 다 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그림책 『11마리 고양이와 바보새』에 나온 크로켓이 먹어보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만들어주신 것이 감자 크로켓이었고 그 이후로 내 생일이면 어머니는 이 요리를 해 주신다. 여러 모로 내겐 추억의 요리다.

집에 남은 재료가 없어 부재료는 다진 양파만 넣었다. 예전엔 소고기를 왜 넣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고기가 빠진 크로켓을 직접 먹어 보니 생각보다 고기의 존재감이 컸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 주신 그 맛과 거의 비슷하게 된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식어 눅눅해져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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