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기독교 결혼식에서 사회가 하는 일

juo 2022. 9. 12. 23:34

2022. 9. 3.

J의 결혼식 당일이다. Y가 조조로 『탑건: 매버릭』을 보고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는 통에 잠깐 깼다 잠들면서 결혼식에 관한 재미있는 꿈을 꿨다. 미리 도착해서 다른 사람의 식을 구경한다거나 양복을 집에 놓고 왔다든가 하는. 어머니가 잠깐 외출하셨길래 부엌의 밥과 코다리조림을 적당히 데워 먹었다. 본가에 있을 때는 자주 이렇게 어머니가 미리 해 두신 음식을 데워먹곤 했지.

저번주에 이어 양복을 차려 입자 어머니가 머리를 매만져주셨다. 한 달 전 비싼 돈을 주고 펌을 한 긴머리를 오늘 사회를 보기 위해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가르마를 타자 요새 연예인들이 자주 하는 머리와 비슷해졌다. 너도나도 하는 머리모양이 확실히 무난하고 모두의 호감을 사긴 하지만 그래도 남들이 많이 안 하는 것이 끌린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문화의 다양성이 보존될 것이다.

차가 밀려 버스가 천천히 움직였지만 일찍 출발한 덕분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Y는 이미 식장에 와 있었다. 지수는 원래 이 친구에게 사회를 맡기려 했지만 Y가 부담스럽다고 거절해서 대신 내가 하게 되었다. Y는 대신 T와 식권 배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식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다 J와 인사를 나눴다. 신랑의 할 일—여기저기 인사하기—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J네 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눴는데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시려 하길래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J 아버지가 소개시켜주신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일 것 같아 싫었다. 시간을 좀 때우다 안으로 불려가 식순에 대해 식장 측과 주례님과 같이 검토를 했다. 애초에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신랑 신부 소개도 없이 화촉 점화부터 진행을 해 달라는 게 의아했는데, 주례, 그러니까 목사님 말로는 화촉 점화가 예배 절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앞으로 뺀 것이라고 한다. 즉 “예배” 전후로만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머지는 목사님이 진행하신다. J 본인은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아버지와 신부 측이 전부 기독교인이라 이렇게 된 듯 하다. 이 때까지는 사회로서 할 일이 적어서 편하다고만 생각했다.

예식 시작 알림과 짧은 화촉 점화식 진행을 마치고 나는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피아노 연주가 이어지고 약 3분 후 목사님이 중앙으로 나와 진행을 시작했다. 굳이 30분이 되길 기다렸다가 딱 맞춰 진행하는 것도 예배스러웠다. 식순이 적힌 종이 쪼가리를 나눠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기도와 말씀과 찬송가가 이어지자 몸이 배배 꼬였다. 끝날 때까지 나가 있어도 상관 없을 것 같았지만 사회를 맡은 입장으로 차마 나가지는 못했고 바깥에서 축의금을 열심히 걷고 있을 친구들에게 “살려줘 차라리 사회를 계속 보게 해 줘” 등의 SOS를 남겼다.

사회로서의 마지막 일인 식당 안내를 끝내고 신랑 바로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은 후 친구들과 빠르게 식당으로 갔다. 맛은 나쁘지 않았고 생맥주 탭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도가 올랐다. J 부부가 자리로 인사를 왔고 아내 분을 실제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적당히 인사를 나눴다. S의 짝인 S`와 다르게 여태까지 만날 일이 없었던 걸 보면 앞으로도 만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

스타벅스에서 좀더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나와 Y는 T의 차를 같이 탔다. Y는 졸다가 먼저 내렸고 T와는 오랜만에 과음을 해 볼까 하다 다음날 제사가 있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 대신 로또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으며 물론 둘 다 당첨은 되지 않았다.

J는 오늘 아내가 짜 놓은 계획대로 고급 호텔에서 묵으며 뜨거운 밤을 보내다 내일 하와이로 갈 것이다. 뜨거운 밤은 아무래도 좋지만 하와이 여행은 부럽다. 후일담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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