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대출 연장 그리고 짧은 휴식

juo 2022. 9. 15. 23:54

2022. 9. 5.

은행에 들러 대출 연장을 하기 위해 오후 반차를 사용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자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지는 흠뻑 젖었지만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기 때문에 찝찝한 기분은 덜했다.

은행 업무는 금방 끝났다. 3년 전 처음 대출받았을 때에 비해 이자가 두 배 가까이 오를 것 같아 앞으로는 이 쪽도 조금씩 원금상환을 해나가야 겠다. 음식과 술 빼면 과소비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금방 다 갚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돈 한 푼 없이 올라와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항상 존경스럽다. 내가 회사원으로 평생 일해도 아버지가 여태 번 돈의 절반이나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자 3시 가까이 되었다. 예정된 회의가 하나 있었고 무슨 얘기가 나올지 궁금했지만 휴가중인 사람이 일을 하거나 회의에 참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애써 신경을 끄고 게임에 집중했다. 우린 매일 일하기 싫다고 울면서 막상 일이 생기면 어서 처리하고 싶어하는 모순된 존재다. 그래도 이젠 밤에 일하는 것도 지양하려고 한다. 메일 알림이 뜨는 것을 보면 가끔 12시가 다 되어 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지만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저녁을 챙겨먹을 때가 되었다. 전기밥솥의 잡곡취사 버튼을 눌러놓고 밥이 다 될 시간에 맞춰 라면사리 넣은 김치찌개를 완성해 한 상을 차렸다. 그리고 밥솥을 열자 나온 것은… 따뜻한 생쌀이었다. 쌀을 붓고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취사를 시작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 밥은 먹어야 하니 라면사리만 건져 먹고 집 앞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 왔다. 편리한 세상이다.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샤워를 하려 헀었는데 급격히 피곤해져 마룻바닥에 누워 잠시 졸았다. 딱딱하고 서늘한 바닥을 등과 뒤통수로 느끼고 있으니 땅끝마을 외삼촌 댁의 마루가 생각이 났다. 늦여름에 마루에 누워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보라색으로 저무는 하늘을 바라봤던 추억, 아니 사실 그런 건 내게 없다. 그런 감성을 느낄 나이가 되기 전에 전통 가옥은 헐리고 민박집으로 바뀌었다. 대신 매체에서 빌려온 추억을 잠깐 내 것처럼 떠올려 봤다.

태풍이 북상하면서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김치도 오징어도 바지락도 있으니 부침개를 해 먹을까 생각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10시 좀 넘어 불을 끄고 누웠다. 하지만 오늘도 결국 1시가 다 되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있어 조금 손해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