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추석 글램핑

juo 2022. 9. 17. 00:28

2022. 9. 9.

우리 가족은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추석에는 주로 가족과 해외 여행을 갔지만 팬데믹 이후로는 그저 집에서 뒹굴거릴 뿐이었다. 올해는 국내 여행 정도는 갈 수 있을 분위기라 전부터 점찍어놨던 가평의 글램핑장에 가서 하루 놀다 오자고 제안했다.

평소에 운전할 일이 전혀 없으니 이럴 때라도 연습을 해야 감을 잃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고 출발해 1/3쯤 왔을까, 어느 아파트 앞 사거리부터 차가 끔찍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1km도 안 되는 거리를 가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즈음 해서 아버지와 교대했다.

점심은 B카페에서 먹었다. 예전에 회사 동기들과 놀러왔을 땐 2층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고 대신 내부가 넓어졌다. 음식은 먹을만했으나 어디까지나 카페라서 식사 메뉴가 다양하지는 못했다.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류의 브런치 메뉴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예쁜 장소가 많아 사진 찍기는 좋았고 달마시안 B는 여전히 귀여웠다.

P테마파크에도 가 볼 예정이었지만 이동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는 바람에 취소했다. 굳이 시간을 내면서까지 두 번이나 갈만한 곳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골 산길을 굽이굽이 따라가자 P글램핑장이 나왔다. 이런 좁은 길은 운전하기 재밌어 보이다가도 맞은편 차가 언제 올지 몰라 피하고 싶기도 하다.

글램핑장에는 길냥이가 두 마리 있었는데 흰 얼룩이가 사람을 잘 따랐다. 아직 고양이의 비언어적 표현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내가 잘 쓰다듬고 있는 건지 감이 안 왔지만 일단 도망가지는 않는 걸 봐서 나름 좋아하고 있던 것일까.

텐트는 조금 낡았고 내부가 충분히 넓었다. 짐을 풀고 바로 앞 계곡으로 내려갔다. 얕고 좁아서 헤엄치며 놀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물놀이용 옷도 가져오지 않았고 늦여름이라 물도 매우 차가워서 무릎까지만 담근 채로 조금 놀다 올라왔다.

식전 맥주를 마시며 쉬다 숯불이 도착하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맨날 돼지고기만 먹는 건 조금 질려서 구이용 소고기 부위와 양고기를 가져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특히 양고기 숄더랙은 앞으로 캠핑 때마다 가져가게 될 것 같다. 주류로는 와인과 복순도가 막걸리를 곁들였다.

처음으로 불멍도 해봤다. 멍하니 있기보단 사진 찍기에 바빴던 것 같다. 동생이 사 온 오로라 가루 봉투를 던져넣자 예쁜 초록빛깔 불꽃이 올라왔다. 제대로 성분표를 보진 않았지만 붕소나 구리 화합물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정리하고 들어와 요트다이스로 설거지 내기를 했다. 걱정한 대로 어머니가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하셨다. 특히 노안 때문에 점수표의 작은 글자와 표기를 읽을 수가 없다고. 보드게임계의 노인 접근성 문제는 생각해봄직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날 유일하게 요트를 터트려 1등을 하셨고 설거지는 동생의 몫이 되었다.

어포를 잔불에 데워와 남은 술과 먹으며 자기 전까지 펭귄파티를 했다. 휴대하기 편하고 룰이 매우 간단하다는 점에서 술마시고 하기 좋은 게임이다. 친구들과 할 때는 그래도 중간은 가는 편인데 오늘은 내가 꼴등을 했다. 이중에서 내가 제일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가?

이정도면 추석을 나름 즐겁게 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부턴 다시 다양한 국가로 맘편히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 동생과 부모님을 데리고 여행하고 싶은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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