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기억을 따라, 밤 산책

juo 2022. 10. 3. 21:47

2022. 9. 24.

『밤 산책』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그대 야밤에 나돌아당기지 말지어다.” 흥미로운 추리 소설이지만 오늘의 일기는 말뜻 그대로의 밤 산책이다. 새벽에 홀로 산책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새벽 감성’을 가지고 어두운 길을 걸으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지만 밤 산책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산책이 아니라 귀가길이다. H누나 신혼 집들이를 마치고 1시가 좀 넘어서 파했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다니던 중학교가 바로 근처에 있어서 집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현재 본가는 그 시절 살던 집과는 좀 떨어져 있지만 심적으로는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고였고 그전까지 드러나지 않던 남자아이들의 거친 면면과 저급한 언행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안그래도 내성적이었고 악의를 대면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도 2학년 때부턴 그런 것들을 적당히 무시하는 법을 배웠고, 취미가 맞는 친구도 조금 생겨서 나름 재미있게 지냈던 것 같다. 철로 위 육교를 넘어 친구네 집에 놀러가 흰개미를 키워보겠다고 같이 산(위치로 봤을 때 부개산일 것 같다)에 가 죽은 나무 밑둥을 쪼개고 다니기도 했고, 하교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 태양 아래서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는 닌텐도DS로 게임을 즐기다 퇴근하는 담임 선생님을 마주치기도 했다. 공원은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흙이 키높이로 쌓여 있었고 벤치는 모두 사라졌다.

공원에서 대로변으로 나가는 내리막으로 가 봤다. 기억 속보다 경사가 얕고 길이가 짧았다. 마치 유치원 시절 자주 오간 키보다 컸던 높은 언덕이 지금 가 보면 오르막길로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비가 거세게 쏟아지던 날에도 자전거로 이 길을 따라 하교하곤 했다.

주차장 초록 철담 너머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회를 흘끗 보고 아직 그 옆에 있을 기나긴 내리막길이 떠올랐다. 떡볶이집은 아직 있을까. 저 길을 따라 하교했던 친구도 있었는데 스마트폰 지도는커녕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 내 세계는 매우 작았고 그 친구들이 살던 지역은 내겐 “잘 모르는 먼 곳”이었다. 그 “먼 곳”은 이제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그곳에 살던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단지 옆 공원을 둘러봤다. 농구를 좋아하던 마르고 키가 큰 강아지같던 친구는 여기서 자주 다른 친구들과 농구를 했고 나는 벤치에서 구경하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농구 경기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흙바닥의 농구장은 남아있었지만 녹슨 골대에 링은 없었다. 15년쯤 전 그 시절부터 보수가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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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 구석의 좁은 길을 따라갔다.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테니스장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더 가자 철담 안의 공터는 버려진 자전거의 무덤이 되어 있었다. 단지 입구 상가의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문방구점은 사라지고 부동산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요즘 아이들에겐 미니카를 돌릴 트랙이나 쫀드기를 구워먹을 장소가 없는 것 같다. 슈퍼마켓은 편의점으로 대체되었다. 상가 지하에도 회초리나 복권 등을 팔던 잡화점이 있었지만 예전부터 지하 자체가 폐쇄되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조아라마트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파트 외벽은 몇 번이고 새로 칠해 모습이 바뀌었지만 단지 내부는 놀랍도록 예전과 같았다. 초등학생 때 살던 아파트 앞의 초록빛 테니스장과 그곳의 철제 파이프 벤치도, 뻔질나게 넘어다녔던 지하주차장 위쪽의 환풍구와 담까지. 어렸을 땐 단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어느 놀이터에 무슨 기구가 있는지까지 모두 파악했는데, 대학생 때부터 살던 지금의 본가는 거주 중인 동을 제외하곤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놀이터의 기구는 예쁘게 칠해진 신식 기구로 바뀌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기어오를 수 있는 곳도 적고 재미가 없어 보였다. 뱅뱅이가 있어 “뱅뱅이 놀이터”라 불린 곳도 깔끔하지만 초라한 기구만 남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부분을 모두 제거한 끝에 이렇게 변한 걸까. 아이들이 줄어든 탓인지 구석의 찾는 사람이 적은 놀이터는 주차장으로 변한 곳도 있었다. 시험 기간에 기분 전환을 위해 이 곳으로 나와서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

단지 외곽의 땅에는 관목 덤불이 있었고 최근에 이름을 알아낸 뿔밀깍지벌레를 종종 봤던 곳이다. 지금은 관목은 모두 사라졌고 건조한 색의 메마른 땅에 앙상한 가로수만 몇 그루 박혀 있었다. 붉은 벽돌의 경비실 건물과 쓰레기 수거장 뒤로는 아파트 1층 복도 통로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복도로 이어진 한 층의 모든 세대가 사실상의 공동 육아를 하던 시대였다.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셔서 문이 잠겨 있거나 하면 옆집에 가서 하루종일 TV나 책을 보기도 하고 밥을 얻어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해 비슷한 나이의 자식들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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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너머로 보이는 고층 상가 건물은 그대로였지만 입주한 학원들은 모두 생소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른들이 원색의 야외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했던 불로만 바베큐 치킨집은 아직 건재했다. 그 옆에는 예전보다 휘황찬란해진 교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사실 건물만 바뀐 게 아니라 입주한 교회도 달라졌다. 원래 있던 교회는 사업이 잘 됐는지 점점 세를 불리더니 두 차례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 지금은 부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걷다 보니 중학생 때부터 살던 아파트가 눈앞에 보였다. 위에도 썼지만 중학생 때는 여러모로 우울했던 시절이라 같은 단지 내로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왠지 친숙하지 않고 붕 뜬 느낌이 든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지금의 본가로 이사오기 전 거쳐 가는 집이란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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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높아보였던 15층, 20층 아파트는 이젠 장난감처럼 보인다. 주말마다 잠을 깨우던 기합소리와 미트 차는 소리가 뻥뻥 울려퍼지던 B중학교의 파란 지붕 체육관과 그 옆에 뻗은 좁다란 샛길이 보였다.

옆 단지로 넘어갔다. 버려진 미니카 부품을 찾는다고 자주 침입했던 쓰레기장같던 공터는 잘 정돈된 텃밭이 되어 있었고 프라모델 등을 팔던 문방구점은 코인 세탁소가 되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매끈한 폐타이어로 둥글게 둘러싸인 모래밭 씨름장은 그대로란 게 놀라웠다. 타이어를 한 번이라도 교체했을까?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씨름은 하지 않을 것이다.

2학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를 지나자 대학생 때부터 전 직장을 다닐 때까지 10년이 넘도록 오갔던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초등학생 땐 이 인근이 모두 논이었고 현장학습을 나가거나 친구들과 쏘다니며 논의 물과 함께 알 수 없는 생물들을 퍼오기도 했다. 지금은 그 위에 주거단지가 생기고 본가가 지어진 것이다.

오늘 지나온 모든 곳들 구석구석에 내 기억이 묻어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 동네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젠가 친구들과 옛 동네 투어같은 것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이들면 제일 재밌는 게 옛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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