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창덕궁 달빛기행

juo 2022. 10. 19. 23:25

2022. 10. 14.

문화재청 트위터를 팔로우하니 재미있는 소식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번에는 창덕궁 달빛기행 추첨에 참여해 봤다. 선착순 구매는 직장인으로서 참가하기가 너무 힘든데 추첨으로도 진행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평생 당첨과 연이 없었던 나는 이번에도 떨어졌지만 다행히 G가 그 행운을 거머쥐어서 같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일은 쌓여 있었으나 금요일이 늘 그렇듯 전부 내팽개치고 일찍 안국역으로 가 저녁을 먹었다. J가 줄까지 서면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했던 칼국수집 앞에는 역시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충고를 받아들여 근처의 적당한 가게로 들어갔다. 온면과 꼬치를 먹었고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식사보단 술을 먹으러 와야 할 것 같은 가격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차례로 입장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밝게 비춘 돈화문은 실루엣과 문양이 강조되어 낮에 보는 것보다 더 화려하면서 신비한 느낌도 들었다. 청사초롱을 받아들고 친절한 가이드 분의 안내를 받아 고궁 관람을 시작했다.

인정문을 지나 인정전의 화려한 모습을 보니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조금 후회되었다. 낙선재에 가자 창호지로 새어나오는 밝은 불빛으로 다양한 문살 모양이 뚜렷이 보여 너무 예뻤다.

상량정에서는 대금 연주, 영화당에선 거문고 연주를 하는 분이 계셨다. 정취가 한껏 살아서 좋았으나 관람 차수와 시간을 생각해 봤을 때 길게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쉬지 않고 연주를 하시게 될 텐데, 힘드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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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정에 들어서자마자 물에 비친 주합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합루 앞에서는 이전 회차 관람객 분들이 왕, 왕비 등과 사진을 찍고 계셨다. 가이드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오늘은 사진을 윤허하셨다”고 한다. 우리도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괜히 부끄러워서 쭈뼛쭈뼛 감사하다고만 하고 내려왔다.

이동 중 너구리가 출현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들 수풀 밑에 숨은 너구리를 보러 모여들어 쭈그려앉는 모습이 우스웠다.

다음은 공연장에서 음료와 함께 가곡과 궁중무용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우린 가이드 분에게 딱 붙어서 부지런히 따라다닌 덕에 맨 앞 자리를 선점했다. 전통 음악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고궁 안에서 관람해서인지 만족감이 상당했다. 음료는 흑미미수와 생강차 중 고를 수 있었는데 멋져 보이는 이름과 흑미 등을 볶아 만들었다는 멋져 보이는 설명을 들으니 흑미미수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그리고 마시면서 생각해보니 이건 흑미… 미수… 미숫가루다, 평범한.

돌아갈 때는 숲길을 따라 걷게 되어 있었지만 전날 멧돼지가 나타난 탓에 안전상의 이유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좀 아쉬워도 전날은 아예 관람이 취소되었다고 하니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기념품으로 토드백을 받았다. 창덕궁과 상량정, 두 종류가 있었는데 우리는 상량정 그림을 원했으나 창덕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펼쳐보니 예뻐서 만족했다.

이것이 세금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내년에는 가족들과 같이 와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당첨이 된다면. 문화유산은 평소엔 그 존재를 느끼기 어렵지만 자주 접할 수록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듯하다. 요새 일어난 몇몇 사건으로 보아 이 사회는 문화재 보존보다는 부동산에 좀더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게다가 23년 청와대 문화재 보전관리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 모두가 좀 더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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