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8.
어제 J로부터 갑자기 나더러 휴가를 쓰라고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강제로 휴가를 사용하게 시킨 모양이다. 놀러 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만 시차상 오전에 보내야 할 메시지가 있어서 반차만 사용했다. 메시지는 결국 읽씹 당한 관계로 보낸 보람은 없었다. 퇴사 후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Y도 불러 오후 2시에 집합해 한국민속촌으로 출발했다. 요새 용인, 기흥, 오산 지역을 많이 가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탓에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은 전부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근처의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돈가스를 먹었는데 고기와 튀김은 특별히 나쁜 곳은 없었으나 소스가 아쉬웠다. 사장님 딸인 듯한 아이가 막 하교를 마친 듯 즐겁게 가방을 메고 들어왔다. 낮에 모든 일과가 끝나는 삶이 부럽다. 지금의 뇌를 갖고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
민속촌은 두세 번 가 봤고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전 트위터 등지에서 한창 전성기를 맞았을 때 가 볼까 했지만 생각만으로 그쳤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곳은 컨셉질을 하면서 다녀야 재밌기 마련이라 한복을 빌리려 했었으나 이미 4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므로 그만뒀다.
우리가 훌쩍 큰 탓인지 예전에 왔을 때보단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관리는 꾸준히 되고 있었고 군데군데 놓인 감, 말린 고추 등의 실제 과채가 놓여 있어 현장감을 더했다. 단풍이 들었으면 더 예뻤을 텐데. 평일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 한적하면서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디딜방아, 연자방아, 절구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 왔을 때 체험해 봤던 기억이 아직 있다. 많이 닳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 반가웠다. 관청에 들러서 서로의 주리를 틀거나 곤장을 때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넓은 장터는 텅 비어 있었는데 사람이 꽉 차면 현장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이런 곳 음식은 비싸다는 편견이 있지만 요새 물가가 너무 오른 탓에 별로 비싸 보이지도 않았다.
그네를 타거나 사진을 찍다 보니 벌써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예전에 없었던 유원지가 보여 들어가 봤다. 페인트로 꾸며 놓은 놀이동산은 매우 이질적이었고 갑자기 근현대로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았다. 놀이기구는 타지 않았고 구석에 있던 세계 문화 박물관을 한 바퀴 돌다 나왔다. 시간 때우기엔 좋았지만 뜬금없었다.
J는 마지막 코스로 보정동 카페 거리를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9시에 신도림에서 아내 분을 픽업해야 할 일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차가 막히는 시간이라 바로 가도 시간이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지각대장 J의 사고의 흐름을 약간 엿본 듯하다. 카페를 못 간 것에 대해서는 매우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어쩌겠는가. 우리도 결혼한 지 두 달도 안 된 가정에 공연히 싸움의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죽음들 (0) | 2022.11.07 |
---|---|
햅쌀 (0) | 2022.10.28 |
맥주 축제, 카카오 서비스 장애 (0) | 2022.10.20 |
창덕궁 달빛기행 (0) | 202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