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햅쌀

juo 2022. 10. 28. 00:41

2022. 10. 25.

집에 쌀이 떨어졌다. 몇 달 전까진 식재료를 자주 주문했기 때문에 바로바로 채워 넣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회사에서 대부분의 식사를 해결하고 있어 기어코 쌀이 바닥나는 상황까지 왔다. 사 먹어도 되고 집에 다른 재료도 있어 어떻게든 끼니는 때울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집에 쌀은 항상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약간의 식재료와 같이 3kg짜리 쌀을 주문해 받았다.

새 쌀로 밥을 먹는 김에 근사한 요리를 준비하고 싶었지만 회사 일이 많아서 저녁 메뉴는 초당 짬뽕 순두부 밀키트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해물 건더기라곤 오징어밖에 들어있지 않아 예전에 사놓은 냉동 새우와 바지락을 털어 넣고 취향에 맞춰 고춧가루와 고추기름도 팍팍 넣었다.

며칠 전에 도정한 햅쌀로 지은 밥이라 그런지 쌀알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탄력이 있었다. 쌀밥 그 자체로 맛있다고 느껴진 건 오랜만이다. 어머니가 주신 김치 등의 반찬을 꺼냈다. 쌀이 맛있으니 반찬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집 밥이 그리워졌다.

식사를 하며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끝까지 봤다. 흡입력이 있고 무척이나 여운이 남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어 더빙으로 봤는데 다음에 영어 더빙으로 한 번 더 정주행 하고 싶을 정도다. 설거지를 마치고 삽입곡인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를 들으며 일을 시작했다. 결말 때문에 우울했는데 야근을 시작하니 더욱 우울해졌다.

회사 일은 별 진척이 없이 삽질만 계속 하고 있어 답답하다. 차출 비슷한 형식으로 잠시 일을 맡게 되었는데, 소스 코드도 업무 프로세스도 생소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뭘 물어봐도 답변이 없거나 일주일은 지난 후에야 답변을 받게 되니 결국 회사 내부의 outdated 된 문서와 기록들에서 단서만 열심히 긁어모으고 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기분이 든다. 외부에서 볼 때는 완벽한 회사라도 내부에서 볼 때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법이다. 삽질을 계속하다 결국 답변이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질문을 하나 던져 놓고 그만 자기로 했다.

주말이 오면 구입한 오징어를 손질해서 무국을 칼칼하게 끓일 예정이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햅쌀밥과 같이 먹으면 분명히 맛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회사일보단 집안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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