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수채화 재입문

juo 2022. 12. 16. 22:51

2022. 12. 7.

지난달 수채화로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기 클래스 홍보 메일이 왔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좀 더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앞뒤 볼 것 없이 신청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수채화도 그려보고 싶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수채화는 학생 때 그려본 것이 전부다. 좋은 기억도 없다. 학교 미술 실습 시간은 기본적인 방법만 알려준 후 두 시간이라는 부족한 시간 동안 각자 알아서 그린 후에 점수를 매기는, 체험에 가까운 활동이라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게다가 좁은 책상은 도화지와 팔레트, 물통 등으로 혼잡하다. 준비물을 잊어버리고 온 날은 친구의 눈총을 받으며 도구를 빌려 그리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라면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다 시간이 되어 회의실로 가자 강사님이 계셨다. 사우 분이다. 회의가 늦거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불참하시는 분도 계셨다. 남는 자리에 팀원 분을 불러볼까 했으나 이런 이벤트를 즐기지 않는 분위긴데다, 보통은 지하철이 붐비기 전 일찍 집으로 돌아가 재택근무를 하셔서 부를 만한 분이 없었다. 팀으로 오신 분도 몇 계셨는데 이런 세션에 자주 같이 참가하시는 듯했다. 사이가 좋아 보여 부러웠다.

강사님이 귀여운 휴대용 파레트와 물감, 물통과 붓 하나를 주셨다. 물감은 자그마한 통들에 직접 하나하나 짜서 준비해주신 듯했고 옆에 색 이름도 예쁘게 적혀 있었다. 그라데이션 연습 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는데 잘 될까 긴장해서 손이 덜덜 떨렸다.

도중에 한 분이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어 주셔서 연말 분위기에 젖은 채 세션을 진행했다.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하고 한 시간 후 우리는 리스 장식 카드와 밤 풍경 카드를 하나씩 완성할 수 있었다. 마스킹 테이프가 잘 안 붙어 삐져나온 부분도 있고 그라데이션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 등 미숙하지만 눈을 흐릿하게 뜨면 나름 봐줄 만한 작품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작품을 모아 사진을 찍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아예 수채화 모임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즐겁겠단 생각은 했으나 속으로는 주저하게 된다.

여태까지 내 주위 사람들은 죄다 텐션이 낮은 편이었다. 끼리끼리 모이기도 하고, 중학생 때부턴 남자만 있는 환경에서 살았으니 더욱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이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으로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팀 분과 시간을 보냈는데 다들 반응이나 감정 표현이 정말 풍부하셨다. 이것이 슈퍼 인싸들의 세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이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사람이 과연 어울릴 수 있을지.

그와 별개로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것 같다, 실은 지금도 많이 좁다. 코로나 분위기가 완화되고 있으니 입사 전처럼 더 많은 사내 세션이 생길 것이고 팀 분위기는 여전히 소극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열심히 참가해 볼 것이다. 이왕 문화가 좋은 회사에 오게 되었는데 우울하게 일만 하다가 돌아오는 나날을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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