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1.
지구인연합 송년회 날이다. 어제 동네 친구들 송년회 이후 새벽까지 마시고 들어와 아이패드로 그림까지 그리다 잔 것치곤 이른 시각인 11시에 일어났다. 저번주에 담근 김장김치 등을 반찬으로 밥을 먹고 집에서 좀 쉬다 출발했다. 저녁 시간보다 좀 일찍 모여 모교인 부평고를 둘러보기로 했다.
부평고는 1학년이 쓰는 신관과 2, 3학년이 쓰는 낡디 낡은 본관, 부속 건물이 있는데 조만간 본관 쪽 건물을 개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가 사진이라도 찍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버스를 타고 곧바로 학교까지 가지는 않고 부개3동 기적의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등굣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보고 싶어서다. 부개주공 3단지의 옛 집에서 출발해 부흥중학교 옆의 좁은 길을 통해 단지 쪽문으로 빠져나왔다. 단지 외곽의 붉은 벽돌담이 그대로 있었다. 요새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의 대문과 담벼락은 점점 크고 높아져 그야말로 요새같이 외부인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듯하지만, 이 오래된 택지는 누구나 들어와도 될 것 같은 친근함이 있다.
길 건너로 오성아파트 옆에 비스듬히 난 길이 보였다. 항상 잠이 부족했던 시절 등교 중 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선 채 졸았던 기억이 난다. 꽃집은 아직도 건재했다. 폐지 줍는 리어카와 자판기 가게 등 신기하리만치 그대로인 가게도 있었고 보신탕 집은 한참 전에 사라진 듯했다. 조금 더 가자 길 양쪽으로 철담이 세워져 있었다. 곧 재개발이라도 하는 것인지.
큰길을 건너 부평중학교 뒤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 양쪽의 낡은 건물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였으나 학교 옆 분식집은 사라져 있었다. 그곳에선 떡볶이에 계란 등의 이런저런 부재료를 선택해 추가할 수 있었고, 우리는 그중에서도 피카츄돈까스를 추가한 떡볶이를 “피떡”이라 부르며 후추를 듬뿍 뿌려 먹곤 했다.
학교 쪽문은 닫혀 있어 정문 쪽으로 돌아갔다. 나무를 타고 내려온 송충이가 꼬물거리던 벽돌담은 이젠 빼곡한 덤불이 얽히고설킨 철담으로 바뀌어 더 이상 담을 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흙 운동장은 잔디구장이 되어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해 같이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사진도 찍고 추억담을 나눴다. S가 송충이를 잡아다 곤죽으로 만든 적이 있던 운동 기구는 사라졌고, 씨름부 건물 앞 철봉 등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신관 바깥쪽 마포걸레가 걸린 벽에 그려진 미술부의 그래피티가 멋졌다.
본관과 체육관 사이 등나무 벤치에는 등나무 대신 철 지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등나무가 학생들을 못 견디고 결국 자결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매점은 자판기가 사라진 것을 빼곤 그대로인 데다 플라스틱 짬통마저 그대로 있었다. 기다란 식탁이 늘어서 있던 학생식당 건물 내부는 코로나로 인해 가림막이 있는 개인 테이블로 교체되었다. 성적이 높은 학생을 뽑아 방학에도 자습을 시키던 장소인 성덕재 내부도 벽을 전부 헐고 식당이 된 듯했다. 자습 중 심심하면 몰래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거나 침대 구석에 숨어 닌텐도 DS를 하곤 했는데.
본관 1층 과학실 옆 구석에 전시된 포르말린에 전시된 표본들이 아직 기억난다. 하지만 본관은 들어가 보지 못했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장애인 주차 스티커 같은 사소한 것이 다 기억났다. 신관은 운동장 이용객에게 화장실을 제공하기 위해선지 개방되어 있었다. 슬쩍 내부를 둘러봤다. 건물을 나와 구석으로 빙 돌아가야 했던 음악실이 이젠 신관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고, 미술실이 1층으로 바뀐 것,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 등의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관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이당 비스트로로 이동했다. 회비를 싹 털어 음식을 잔뜩 시키자 식탁 위가 꽉 찼다.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좀 애매했지만 나머지 음식은 괜찮았다. 아늑한 한옥 방에 모여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카페에서 더 놀다 헤어지기로 하고 가좌동의 코스모 40으로 이동했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아래층에 『쇼미더머니』 촬영장으로 쓰였다는 넓은 공간도 있었다. J는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주인공 일행이 춤을 췄던 교회 클럽이 생각난다고 했다. 배부르다던 우리들은 빵을 또 잔뜩 시켜 모두 먹었다. 커피뿐 아니라 맥주도 파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 먹은 친구들이 모이니 옛날 얘기나 자꾸 하게 되는데 그만큼 그 시절을 즐겁게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졸업식』에서는 운동장에게 “다신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난 또 새로운 여행에 빠져 곧 널 잊을 거야 아마.”라고 말하지만, 우린 가끔은 이렇게 다 같이 돌아와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의 여행을 계속하기 위한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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