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4.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때까지는 주로 글을 쓰고 노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잡담을 하며 어울리는 것에 대해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거나 게시판 분위기에 맞지 않는 글을 써 비난을 받았던 적도 한두 번 있었지만 그래도 커뮤니티 활동은 꾸준히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만든 사이트에서만 글을 썼고, 루리웹이나 클리앙 등의 커뮤니티에선 거의 눈팅만 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공개된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게임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생에서는 (싫지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어서 억지로라도) 말을 적당히 하는 걸 보면 요새 서브컬처에서 많이 등장하는 커뮤장애는 아닌 것 같은데.
SNS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마스토돈에서 사람들과 노는 것, 블로그 포스팅은 괜찮다. 비교적 보는 사람이 적어서일까. 하지만 팬아트는 남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어딘가에는 올려야 한다. 여태까지 세아스토리 팬아트를 많이 그렸는데 다행히 팬카페가 익명으로 운영되고 있어 글을 쓰는 데 큰 부담감은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 처음부터 뭔가를 그려야지 하고 시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능력의 부재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뭔가” 그리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선을 긋다 불현듯 떠오른 대상을 그리는 편이다. 최근 새로 받은 브러시를 시험해 보다 우연히 최근 알게 된 버튜버 사사_44의 팬아트를 그리게 되었는데, 이 분은 익명 팬카페가 없었다. 디스코드 채널은 있지만 이건 또 게시판이나 SNS랑은 전혀 다른 공간이라 글을 올리기가 망설여졌다.
어쩔 수 없이 루리웹 유머 게시판에 첫 글을 올리기로 했다. 그 분의 시청자가 많이 활동하기도 하고, 일베의 고인드립에서 비롯된 말끝에 “노”, “누”를 붙이는 문화가 없어 거부감이 적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다 쓰고도 게시 버튼을 누르지 않고 다른 일로 회피하느라 30분은 지난 것 같다. 결국 몇 년 만에 게시판에 글을 쓰게 되었다. 역시 대형 커뮤니티라 그런지 20분 만에 5천 조회수가 나왔다. 팬카페나 픽시브 같은 곳에 올릴 때와는 딴판이다. ‘막상 올리고 나니 별 것 아닌데’라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긴장이 됐는지 몸이 춥다. 하지만 누군가 내 작업물을 보고 반응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앞으로도 어디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지, 아님 여전히 힘들어할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나름 기념이라 기록해 봤다.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방 보며 술 마시기 (0) | 2022.12.30 |
---|---|
세아스토리 24시간 방송 3년차 (0) | 2022.12.27 |
모교 둘러보기 (0) | 2022.12.25 |
모임 총무의 고난 (0) | 2022.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