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준비되지 않은 성탄절

juo 2022. 12. 31. 04:51

2022. 12. 25.

해가 갈수록 크리스마스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고 느꼈다. 올해 역시 그 정점을 찍었다.

크리스마스는 밖에 나가 거리를 걸으며 번화가의 장식물과 사람들을 봐야 느껴지는 것 같다. 올 겨울의 나는 추워서 멀리 돌아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회사와 집만 왕복하는 생활이 전부였다. 그 도보 10분쯤 되는 거리를 품은 이 역삼역 업무지구에서 보고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동맥경화처럼 꽉 막힌 테헤란로의 차와 경적 소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선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 평범한 주말과 다름없이 『사이버펑크 2077』만 밤새 플레이했다. 작년과 다르게 보드게임 파티도 없었고 달리 약속을 잡을 생각도 못했다. 하긴 결혼한 친구도 많고 교회에 억지로 끌려간 친구도 있어 모임이 성사되진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도 없었다. 사실은 크리스마스 때문에 셀프 선물을 산다기보단, 항상 하는 쓸데없는 소비 중 하나 분의 죄책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떠넘기는 것에 가깝지만. 대출 원금 상환에 집중하다 보니 온전히 나만을 위한 커다란 소비는 줄이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뒤늦게 슈톨렌이 먹고 싶어진 것도 웃기다. 보통은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받아 한 조각씩 썰어먹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그걸 이제사 알아보고 있다. 항상 유행에 발을 못 맞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날짜가 정해진 기념일조차 때맞춰 못 챙기고 있다니.

바에 가서 맛있는 술과 음식이라도 먹었으면 즐거웠을까? 이브에는 춥다는 핑계로 안 나가놓고 휴일이 끝나는 크리스마스 당일 밤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므로 이미 밤늦은 시간인 지금 나가 술을 마시기도 뭐하다. 계획 없이 사는 삶의 패착이다.

그래도 이맘때면 항상 듣는 소울컴퍼니의 『Soulful Christmas』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2006년에 나온 곡이지만 아직까지 공감이 되고 즐겨듣는 곡 중 하나다. “단 한 번만 돌아와 줘, 산산조각 나고 사라져버린 상상 속의 산타클로스.”

지나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고 나만의 속도로 연말 분위기를 느끼려 한다. 생각난 김에 슈톨렌도 구입했다. 30일엔 본가로 가 가족들과 파인다이닝을 즐기고 술과 수제 햄을 먹을 것이다. 기념일을 즐기고 싶다면 뭘 할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훈도 얻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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