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공연 입구컷

juo 2023. 1. 18. 23:39

2023. 1. 7.

오랜만에 클럽에반스에서 베이시스트 Robiq님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이런 공연 소식 때문에 글도 안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지울 수가 없다. 게으른 몸을 겨우 움직여 오도로키우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자가제면을 해 표면이 보들보들하면서 내부는 살짝 탱탱한 면발이 완성도 있었다. 같이 주문한 가라아게도 짭짤한 간과 후추향이 잘 배어 좋았다. 하나를 너무 꽉 잡아 튀김옷에서 커다란 닭살이 쏙 빠지고 말았다.

집에 들렀다 다시 나가기도 애매해 시간도 보내고 배도 꺼트리려고 근처의 코인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에 가래가 많이 꼈다. 담배도 싫어해서 안 하는데 이럴 때면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노래 후 랩을 좀 하고 나니 목이 쉬어 홍대로 이동해 카페 루치아에 들어갔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조용했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어 약간 소란스러웠다. 그동안 못 읽고 북마크만 해 놓았던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나갈 때까지 옆에서 대화 소리가 계속 들려왔는데 미대 출신인 듯했다. 평소 내 주위 사람들에게선 절대 나올 일이 없는 미술이나 문학 쪽 화제가 많이 나와서 흥미로웠다. 이런 대화 주제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평소 공대생 사이에선 들을 일이 없는 신선한 주제라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점심도 늦게 먹었으니 저녁은 클럽에서 맥주를 마시며 버티다가 공연이 끝나고 먹기로 했다. 공연 시작이 저녁 8시 반이라 항상 그랬듯 30분 전에 에반스에 도착했다. 하지만 입구에서 나를 반긴 것은 닫힌 문과 만석으로 인한 마감 안내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이었다. 20초 정도 현실을 직시할 시간을 가진 뒤 1층으로 내려왔다. 난 대체 왜 점심부터 집을 나와 멀리 홍대까지 온 건지, 슬퍼졌다.

밥이라도 먹기 위해 주위에 찍어뒀던 음식점 중 혼자 갈 만한 곳을 찾아갔다. 이리에라멘이 9시까지 영업한다고 되어 있어 열심히 걸어갔지만 이미 닫혀 있었다. 이런 경우 지도 앱에 수정 제안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지만 영업시간 안내도 없어서 관뒀다. 한 번 더 힘을 내 다음 후보지였던 야끼도리나루토까지 걸었다. 내부는 꽉 차 있고 웨이팅까지 있었다. 밥집이면 몰라도 술집 웨이팅은 할 이유가 없다, 특히 혼자서는. 매번 계획 하나가 어그러지면 이후 계획도 줄줄이 넘어진다.

같이 마실 사람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집 가까운 데 가서 마시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서울대입구역의 링고까지 갔다. 마침 GD 생맥주가 들어와 있어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가족 여행 숙소 예약에 베스팅된 회사 주식에 대한 세금까지 내느라 통장 잔고가 십 년만에 최저점을 찍은 참이지만, 그건 그거고 오늘은 마시는 날이다. 안주 하나를 시켜 놓고 괜찮은 맥주 네 잔을 마셨다. 그래도 오늘 하나 배웠다. 적어도 다음 공연 때는 이런 꼴을 맞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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