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1.
친구 JH의 동생인 JC 결혼식 날이다. 부모님이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양복을 다려놓을 테니 본가에 들러 입고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동생의 친구가 어제 본가에서 자고 간다고 해서 그냥 집에 있는 와이셔츠와 슬랙스, 동생이 생일선물로 사 준 나이키 에어포스를 걸치고 가기로 했다. 사진도 안 찍을 거라 복장은 크게 관계없다.
충분한 수면 후 식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할 생각으로 나와 전철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로부터 전화가 왔다. JH였다. D랑 축가도 불러야 하고 동생 결혼식 뒷바라지로 바쁠 텐데 무슨 일이지?
“야 너 오늘 결혼식 오지?”
“응.”
“지금 어디야?”
“이제 구로.”
“응 오케이 알았어.”
“아니 뭔데 무슨 일인데.”
불안해서 추궁을 좀 해 보자 D가 아침에 사고를 당해 아직 식장에 도착하지 않아 내가 축가를 대신 불러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 생각을 정리해 봤다. 축가 자체는 과거 JY 결혼식 때 JH와 같이 부른 『좋겠다』 여서 일단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가사도 스크린에 뜨고. 문제는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 상태도 별로고, 곡 중간에 덕담 같은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서로 어색한 사이까진 아니지만 별로 접점이 없어 해 줄 말이 없었다. 뭣보다 부르는 사람 소개할 때 “신랑의 형의 친구입니다”라고 하면 이게 무슨 관계인가 싶잖아.
시작 5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축의금 내는 곳에 D가 JH와 같이 있었다. 간단히 인사 후 식장 안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식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JH의 식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님의 고집인지 기독교 목사님의 주례가 있었고, 적어도 JS 결혼식 때처럼 결혼식의 탈을 쓴 예배까진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망원렌즈를 테스트해 봤다. 역시 인물 사진이 잘 나온다. S가 자기 결혼식 때 보조 사진사를 하지 않겠냐 물었지만 난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 대충 여러 장을 찍은 후 운 좋게 잘 찍힌 걸 골라내는 편이라 자신이 없다.
식이 끝나고 바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신도림 웨딩시티는 코로나 때 와서 식당을 즐길 기회가 없었는데, 음식이 뷔페 치고는 대체로 맛있는 편이었고 맥주도 시원해 오랜만에 약간 과식을 했다. 옛날 같았으면 질보다 양을 중시했을 친구들도 이제는 몇 접시 먹지 못하고 배부르단 말이 나온다.
D와 만나 인사 좀 하려 했더니 밥도 안 먹고 돌아간 모양이다. JH에게 자세한 말을 듣자 하니 아침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어서 잠시 병원을 갔다 왔다고. 정말 내가 축가를 부를 수도 있던 상황이었구나 싶었다. 결과가 어떻든 진짜 내가 불렀다면 재밌는 썰이 하나 생겼을 텐데, 역시 내 인생은 대체로 평범하고 평온하다.
누구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항상 보드게임카페로 몰려가곤 했는데 신도림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도림천 산책이나 하다 헤어졌다. 하루가 금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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