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북한산 등반

juo 2023. 3. 7. 22:39

2023. 2. 25.

며칠 전 G가 등산을 가고 싶다고 해 나와 K와 J가 붙었다. 작년에 산 등산화를 몇 번 못 쓰기도 해서 반가운 소리였다. 장소는 북한산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코스를 정하는 과정에서 K가 둘레길을 가는 거 아니었냐, 꼭 정상을 찍어야 하냐기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었다. 산을 갔으면 당연히 끝을 보고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백운대를 목표로 하되 오르지 못할 것 같으면 중간에 내려오자고 합의를 봤다.

7시 40분, 평일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오르는 높은 산이기도 하고 날씨가 춥다는 얘기도 있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내의는 없고 대신 반팔 티셔츠 아래 속옷을 받쳐입은 후 그 위로 두꺼운 티를 입었다. 여기에 얇은 후드 집업 하나를 걸치고 예비를 하나 더 가방에 넣었다. 바람막이도 없어 최대한 가벼운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섰다. 그 외 짐은 초코바 4개, 생수, 두꺼운 장갑, 얇은 장갑, 작년에 아버지께 달라고 해 받아온 트레킹 폴 정도였다.

북한산우이역에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친구들이 아직 안 왔길래 편의점에서 뭉개뭉계란 고구마 샐러드를 사 아침을 때웠다. 감자를 더 좋아하지만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편의점 내부 취식이 안 되어 불편하게 길거리에 서서 먹었다. 전 회사 다녔을 때는 지하 편의점에서 이걸 사 올라와 아침을 때우기도 했었지. G는 약간 늦었고 K는 그보다 더 늦게 도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 아무 가게에 들어가 편히 앉아 김밥이라도 사 먹었을 텐데. J는 감기에 걸려 오지 못했으므로 셋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니 점점 더워져서 후드 집업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예비 옷을 챙기지 말 걸 그랬다. 항상 안전에 신경쓰는 G가 겁을 먹었던, 얼음이 언 곳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에 초코바를 하나 까먹고 올라갔다. 당분이 몸에 흡수되며 바로 힘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오르는 것치곤 그닥 힘이 들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인 가파른 바위와 철 난간이 중간중간 나타났다. 계단보다는 이런 코스가 더 재미있고 오르기 쉽다. G는 이런 곳을 처음 오른다고 한다. K의 체력이 위험해 보였으나 어찌어찌 백운대 바로 밑까지 올랐다. 사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굳이 기다려서 찍을 이유는 없었다. 근처에 앉아 서울 경치를 보며 G가 싸 온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새콤달콤하고 수분이 많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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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늘 그렇듯 지루했다. 트레킹 폴을 처음 써 봤는데 무릎 관절에 가는 부담이나 미끄러지고 헛디디는 일이 줄어 만족스러웠다. 이 산에는 고양이가 많이 보였는데, 중간에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부비적거려 한동안 쓰다듬어 줬다. 이렇게 나를 좋아해 준 고양이는 예전에 고양이 카페에서 닭가슴살을 샀을 때뿐인데. 그래도 길냥이 줄 먹이는 없다.

배가 고파오자 음식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이 상태라면 1인 1닭도 가능할 것 같았다. 예전에 어디선가 추천받은 우리콩 순두부로 들어가 전골 작은 거에 모둠전 그리고 막걸리를 주문했다. 반찬과 두부전골도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론 모둠전, 특히 굵직하게 썰어 부친 호박전이 아주 맛있었다. 너무 급하게 먹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속이 더부룩해졌고 그쯤 해서 먹는 걸 멈췄다.

집에 돌아와 물 흐르듯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 등산화 세척, 내친 김에 화장실 배수구 청소까지 마친 후 씻었다. 아직 배가 불러 저녁으로 가볍게 샐러드를 먹을까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모처럼 일찍 잠이 오는 김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