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스시오마카세

juo 2023. 4. 6. 22:01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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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11시에 딱 맞춰 체크아웃했다. 피규어 박스를 백팩에 넣으니 간신히 들어가 다행히 쇼핑백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패딩은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녀야 했지만 대신 안에는 반팔만 입었다. 하루종일 더웠으므로 정말 적절한 판단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다이칸야마의 스시 타케우치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생각지 못하게 하치코 동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주위가 붐벼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안 들었다. 흐렸지만 벚꽃이 어느 정도 피어 있어 예뻤다. 스시야는 한참 더 걸어 한산한 골목가에 있었다.

첫 메뉴가 나오자마자 술부터 주문했다. 메뉴는 따로 없고 종류와 원하는 느낌을 말하면 구비해 놓은 것 중 꺼내 주신다. 깔끔하고 드라이한 니혼슈 도쿠리로 시작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죄다 화이트 와인을 시키길래 우리도 하나 시켰다. 어느 정도 산미가 있으며 드라이한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초밥엔 일본주가 어울리는 것 같다. 접객은 매우 친절했고, 재료를 또박또박 말씀해 주셔서 알아듣기 편했다. 한국 스시야에 가도 목소리가 작으신 분을 만나면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은데 말이다. 아래는 나온 메뉴 리스트고 기억에 남는 부분만 메모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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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바: 고소하고 신 맛이 어우러진다. 샥스핀이 올라간 듯하다.
  • 히라메
  • 시마에비
  • 이와시 마끼
  • 시마아지
  • 카스고
  • 노도구로: 껍질을 약간 그슬려 바삭하다.
  • 이카: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좀 더 탄력이 느껴진다. 약간 짰다.
  • 쥬토로
  • 고하다: 식초에 절여 비린 맛을 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약간 느껴졌다.
  • 카이: 양념 없이 구운 가리비 꼬치. 수분이 많이 날아간 듯하다. 달달하니 안주로 좋다.
  • 아지
  • 타이라가이: 얇게 썰어 간을 해 김에 쌌다. 좀 덜 구웠어도 괜찮았을 듯.
  • 오하기: 중간중간 씹히는 야채의 식감이 느끼함을 중화시켜 주었다.
  • 우니: 이 정도 양의 성게알이라면 비린 맛이 조금은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 감동했다.
  • 장어
  • 과일 디저트

스시는 샤리의 간이 센 스타일이었고 대체로 좋았다. 조개류는 오버쿡된 느낌이 있었다. 일본에서 먹어 본 첫 오마카세인데, 시부야 근처라 비싼 건 어쩔 수 없지만 만족했다.

동생은 옷을 사기 위해 쇼핑몰들을 둘러보러 갔다. 나도 일본 스타일 옷에는 약간 관심이 있었지만 쇼핑 성지라는 곳들에서 파는 것은 한국이랑 별다를 게 없을 것 같아 따로 애니메이트로 향했다. 생각보다 관심이 가는 물건이 없었다. 같은 건물 지하에 만다라메도 있어 구경을 갔는데, 질릴 만큼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니 무슨 자료실에 있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집결 후 캐리어를 끌고 질릴 만큼 많은 사람 사이를 헤쳐 시부야 역으로 왔다.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동생은 다신 도쿄를 오지 않겠다며 다음엔 시골로 가자 했지만 사실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쇼핑한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그리고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지만 않으면 좋은 곳이다. 도쿄에는 아직 가고 싶은 곳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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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항까지 갔다. 짐을 부치는데 어느새 아시아나 골드가 찍혀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모두 멤버십 등급이 내려갔었는데. 그래도 짐을 일찍 부치고 찾을 수 있는 것 말고는 별 거 없다. 공항 옥상 전망대는 시원하고 좋았지만 내부는 삿포로 공항에 비하면 쇼핑할 곳이 없는 편이었다.

공항 음식점 곳곳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긴자 오구라에 웨이팅이 없길래 대기석에 앉았다. 메뉴판에 있던 히츠마부시를 먹어 볼까 했는데 오뎅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오뎅 세트와 하이볼을 시켰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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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항공편은 ANA가 아니라 아시아나라서 아쉽게도 『원피스 필름 레드』를 이어서 보지는 못하게 되었다.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 불행해지는 기분이었다. 내일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대욕장을 즐겨야 하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냐고 동생과 한탄했다.

김포공항은 도심 한가운데 있다 보니 착륙할 때의 야경이 예뻤다. 동생은 다리가 아프다며 택시를 타고 본가로 갔다. 역시 씀씀이가 시원시원하다. 부모님께 카톡이 왔다. 아버지는 택시 타고 집에 가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짐 정리는 내일 하고 씻고 푹 쉬라 하셨지만 나는 지하철로 집에 가 돌아가자마자 짐 정리부터 끝내, 결과적으론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았다. 왠지 여행 후 정리는 바로 해야 속이 시원하다.

출발 전에는 몇 년간 여행의 즐거움을 모두 잊어버려선지 조금은 시큰둥했는데 막상 돌아오자 또 떠나고 싶다. 올해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이곳저곳 갈 것이다. 온천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잠들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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