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
인천에 살았을 때는 벚꽃이 피면 인천대공원이나 자유공원으로 친구들과 놀러 나가곤 했다. 코로나 19가 창궐했을 땐 벚꽃놀이도 시들해졌지만 작년부턴 좀 갈 만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서울 시민이 되어버린 몸, 인천 서쪽 끝까지 가기는 너무 멀다. 작년에는 석촌호수를 갈지 고민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호수 주위를 도는 인간 회전초밥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포기했었고 올해도 똑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어제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자 Y님은 혼자면 나가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혼자서 벚꽃 구경도 못 할 이유는 또 무엇이랴. 이런 아무 이유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요받으면 괜히 싫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깔끔하다”, “게임을 줄이고 학원을 다녀야 공부를 잘한다”, “애인을 사귀고 결혼을 해야 외롭지 않다”, “그런 곳은 여자들과 같이 가야 한다” 등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온 말들을 난 꼬박꼬박 어겨 온 듯싶다.
끼니도 해결하고 글도 좀 읽을 생각에 카페로 나갔다. 빵이 맛있다고 예전에 H누나에게 추천을 받은 인포메이션 카페라는 곳이다. 치아바타와 휘낭시에만 가볍게 시켜 봤는데 주말마다 오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북마크 해둔 글을 좀 읽다가 얼마 전 G가 같이 보자고 제안했던 JLPT 응시 신청을 했다. G는 N2를 보자고 했지만 사실 우린 따로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으므로 합격할 수 있을 리 없다. G는 법조계에 있으니 한자는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격증이 목표가 아니고 말 그대로 “목적 없이” 응시하는 거였으므로 N2로 신청했다. 나오는 길에 빵을 더 포장해 왔다.
돌아가는 길에 집 근처 거리의 벚꽃이 너무 예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아예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렌즈는 탐론 70-180이다. 몇 장 찍다 보니 좀 아쉬워 아예 출사를 나가고 싶어졌다. 석촌호수보단 양재천이 사람이 적을 것 같았다. 겨울에 양재 시민의 숲에 갔을 때는 풍경이 별로 예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궁금했다.
양재천은 약간 애매했다. 공사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 여기저기 황색 모래가 드러나 있었고 너비에 비해 벚꽃의 밀도가 낮아 사진을 찍을 만한 구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양재 시민의 숲을 따라 흐르는 여의천은 꽃이 더 화사하고 예쁘게 펴 있어 사진기를 들이댈 맛이 났다.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코스플레이어와 사진사, 구체관절인형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꽤 보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행사장이 아닌 곳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슬슬 돌아갈 생각으로 걷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게 오래 불면서 꽃잎이 일제히 휘날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촬영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나도 이때다 싶어서 연사 모드로 놓고 사진을 몇십 장이고 찍었다. 흩날리는 흰 꽃잎이 프레임을 가득 채워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 어디서 저녁을 때우지 고민하다 N님과 약속이 잡혀 홍대 방향으로 나갔다. 이리에라멘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벚꽃 나무에 달이 걸린 사진을 찍은 후 바 포:루로 가서 즐겼다. 예쁜 사진을 많이 찍고 맛있는 술도 마셨으니 만족스러운 하루다. 내일 사진을 편집할 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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