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와이프와 먼저 일본 여행을 간 J가 보내온 사진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한 구름들, 선명한 색채. 반면 나와 Y가 일본에 있을 때의 예보는 비 소식밖에 없었다. 이 여행 날짜 선정은 100% J에게 맞춘 건데, 배가 아팠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동생, 동생 남자친구와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 점심을 사 줬다. 택시비는 아버지가 내 줄 터다, 아마도. 원래는 Y와 공항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Y는 가격이 비싸다고 집에서 따로 먹고 출발한다고 한다. 여행은 원래 돈을 쓰면서 만족감을 얻는 과정 아닌가?
인천공항은 오랜만에 왔는데 코로나 여파인지 면세점이 많이 닫은 상태라 볼거리가 많이 없었다. 오히려 그간 무시했던 김포공항보다 넓지만 심심한 느낌이었다.
홋카이도 공항 입국심사장에서 동생 일행을 다시 마주쳐 “여” 하고 인사를 건넸다. 동생은 늘 그랬듯 전차를 타고 삿포로 시내까지 간다고 한다. 나는 처음으로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봤다. 조금 더 쌌고, 뭣보다 갈아타지 않고 앉아서 편하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이 꽉 차 버스 한 대를 보냈다. 스스키노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홋카이도만 5번째 오다 보니 스스키노 거리가 우리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성수기인 데다 여행 계획도 갑자기 잡아야 한 탓에 위치와 가격, 시설이 모두 괜찮은 숙소가 전혀 없었다. 오늘 묵을 UCHI 스스키노(의 남아 있던 방)는 약간 비쌌지만 매우 넓어 최대 6명까지 쾌적하게 잘 수 있을 정도로 사치스러웠다. 숙박 인원은 두 명뿐이었지만. 태블릿 키오스크로 셀프 체크인해야 하는 시스템과 허름한 건물 외관과는 딴판이었다.
9시가 지나 갈 만한 식당은 대부분 닫은 상태라 이자카야에서 술을 먹으며 저녁을 때우자고 제안했다. Y는 내가 안주를 저녁 삼는 것도 이상한지 “돈이 많이 나갈 테니까 다른 곳에서 저녁을 먹고 이자카야를 가자”고 했지만 그러면 안주를 다양하게 먹지 못할 테니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술자리로 저녁을 갈음하는 건 한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인데.
구글 맵을 뒤져보자 해산물이 주 메뉴인 곳이 많았다. 개인적으론 일본을 왔으면 질 좋은 해산물을 잔뜩 먹어야 한다는 주의지만 영찬이는 해산물을 싫어해 가게 선정이 힘들었다. Y는 블로그 리뷰를 뒤져보다 사부로 본점이라는 곳을 가자고 제안했다. 해물이 아닌 메뉴가 많고 하이볼 노미호다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인터넷도 느리고 해서 다른 괜찮은 곳을 찾기가 피곤했기 때문에 그냥 갔다.
Y 생각한다고 너무 비싸지 않은 비 해물 메뉴—가라아게, 햄카츠, 꼬치구이—와 하이볼 노미호다이 30분을 했는데,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만족스럽진 않았다. 하이볼도 도수가 약해 술을 마시는 것 같지도 않았고. 노미호다이 시간이 끝나자마자 차라리 내가 따로 돈을 내겠다 하고 일본주와 회 세트를 시켰다. 연어, 참치, 도미, 가리비관자, 고등어가 세 점씩 나왔다. 고등어가 비린 걸 빼면 가격 대비 만족스러웠다. 아무래도 여긴 해산물이 괜찮은 집 같은데 맛없는 메뉴만 골라 먹은 게 아닌가 싶다.
이 녀석이 회를 왜 싫어하는지 궁금해져서 회를 조금씩 떼어 주면서 조사를 해 봤다. 아무래도 Y는 유전적 요인인지 감칠맛이란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따라서 안 그래도 돈 쓰는 걸 싫어하는데 아무 맛도 안 나면서 비싼 회를 먹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일본주를 싫어하는 것도 이 감칠맛을 느끼지 못해설까?
여행은 역시 입맛이나 돈 쓰고 관광하는 스타일이 맞는 사람들끼리 가야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 왔는데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이래서 우리 가족들과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이가 있으셔서 처음 드시는 것에 대해선 약간 말이 나오긴 하지만 맛없어하거나 못 드시진 않으니까.
편의점에서 크림빵과 스트롱제로를 종류별로 사 숙소에서 마셨다. 역시 싼 가격에 빨리 취할 수 있는 술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가격에 팔았으면 좋으련만 주세 때문에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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