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
숙취로 인한 약간의 두통과 함께 일어났다. 이른 시간부터 햇빛이 블라인드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와 잠이 일찍 깼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은 후 조금 더 잠을 청했다.
어제는 나가서 해야 할 일을 몰아 처리했으니 오늘은 집안에서 해야 할 일 차례다. 카페에서 사 온 소시지빵에 마지막 남은 멸균우유를 곁들여 처리했다. 어제 찍은 벚꽃 사진을 편집하기 시작했는데, 신이 나서 연사를 남발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저 없이 비슷한 사진을 지우고 나니 20장이 조금 넘게 남았다.
잠결에 아이패드에 메모해 놓은 다른 할 일에 착수했다. 이불을 매트에서 걷어 세탁소에 맡기고, 오는 길에 밀키스와 따옴바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과음한 다음 날엔 평소와는 다르게 탄산음료와 상큼한 셔벗이 땡긴다.
다음은 청소기를 돌렸다. 먼지를 대충 털어 내고 바닥 구석구석의 머리카락을 빨아들인 뒤 바닥을 밀고 물걸레질까지 마쳤다. 청소하는 도중에도 머리카락이 새로 나타나고 일기를 쓰는 지금도 어디서 나온 지 모를 먼지가 생겼지만 주기적인 청소는 중요하다. 내친김에 식기 건조대도 빼서 닦았지만 녹으로 물든 부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귀찮으니 언젠가 어머니께 지우는 법을 물어보기로 하자.
옷걸이에서 두꺼운 옷을 모두 꺼내 막 깐 이불 위로 던졌다. 다시 여름옷을 꺼낼 때가 온 것이다. 겨울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멀쩡하더라도 버리기로 했는데, 사회 초년생 즈음에 구입한 남방이 대부분이었다. 요새는 주로 맨투맨 셔츠를 입는데 해져서 버리는 게 빠를지 유행이 지나서 안 입게 되는 게 빠를지. 꾸깃꾸깃한 옷은 에어드레서에 적당히 돌려주었다. 스팀다리미가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귀찮아서 주름이 안 지는 다른 옷 위주로 입게 된다.
J형의 아마추어 자작 곡을 위한 커버 그림도 마쳐버렸다. 요새 바쁘기도 했고 그림에 대한 의욕이나 자신감도 전보다는 덜 한 탓인지 약간은 대충 그려진 듯 하지만 일단은 완성을 한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책장에 점점 쌓여만 가는 책을 읽으려 했는데 G로부터 저녁 먹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역삼의 음식점은 일요일엔 죄다 문을 닫기 때문에 중간 지점인 서초역에 있는 평양냉면 집을 갔다. 국물이 진하고 짭조름해 일반적인 평냉의 슴슴한 느낌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좋았고 떡갈비도 곁들여 먹기에 괜찮았다.
일요일이라 바로 파할까 했는데 놀랍게도 G가 우리 집에 가서 술을 먹자고 했다. 오늘 사무실에 갔다 왔다는데 그럼 술이 땡길 만도 하지. 배가 부르니 간단한 안주와 함께 집에 다시금 쌓여가고 있는 위스키를 까기로 했다.
하쿠슈, 글렌피딕 VAT 04, 와일드 터키 101을 일렬로 세워놓고 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집이 “Four Seasons” 호텔과 내 닉네임에서 따온 “줘 시즌”으로 불리고 있는데 고객님들께서 제공되는 술과 음식에 만족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G가 돌아가고 일본어 교재를 펼쳐서 1강을 봤다. 오랜만에 연필을 사용해 본다. 한 번에 합격할 생각은 없지만 외워야 할 한자의 양을 떠올려보니 까마득하다. 올해는 아무래도 직장이나 컴퓨터 공학 쪽과는 전혀 상관 없는 공부를 주로 하게 될 것 같다. 사 놓은 책은 양 쪽 다 쌓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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