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
살면서 퀴어문화축제에 간 기억이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동인천에서 열린다길래 설렁설렁 가 봤는데 하필 그때가 2018년이었다. 우익 기독교 카르텔이 꽉 잡고 있는 동네답게 반대 세력의 물리적 테러가 극심했던 시기였다. 그렇잖아도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사라져야 할 레거시라 생각했는데 조금 더 확고해진 것 같다.
다음은 2019년 J와 체코 스위스 여행을 간 마지막 날, 바츨라프 광장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우연히 축제 중이었다. 인천에서 봤던 것관 다르게 무지개로 뒤덮인 광장과 한가운데서 소박하게 시위하고 있던 혐오세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다. 회사에서 SQCF 부스 운영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길래 참여해 봤다. 전날 회의에 참여해 쭈구리처럼 브리핑을 들었는데, 나 빼면 다들 몇 년째 참여하신 베테랑들이었다. 참여자 분들을 보니 역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이런 이벤트 참가율이 저조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부스 운영은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제 오전부터 아프던 입술이 이제 경이로울 정도로 부어 있었다. 예전에 종종 어머니가 “아빠 닮아서 입술이 썰면 한 접시는 나오겠다”라고 놀렸는데 이젠 두 접시쯤 나올 것 같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자 벌에 쏘인 거 아니냐, 응급실을 가 봐라 등의 말이 있었다. 아주 아프진 않았지만 땡볕 아래서 하루종일 마스크를 쓸 일이 걱정되었다.
도착해서 시간이 좀 남아 우선 부스를 한바퀴 돌아봤다. 경찰 분들이 수고를 해 주셔서인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교회 노인네들의 화력이 낮은 탓인지 사람이 많은데도 나름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누군가 농담 삼아 지옥불 체험판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청년부는 어김없이 동원되어 나왔다.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모르겠다.
시간이 되어 회사 부스에 가 뭘 도와드리면 좋을지 물어봤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판넬을 들고 사진을 찍어드리는 이벤트를 부탁받았다. 하지만 카메라 배터리가 이미 바닥나 있어 주로 핸드폰을 받아 찍어드렸다. 게다가 인쇄 시간도 한참이고, 너무 더워서 그런지 카메라 동작 오류도 있어 못 뽑아드린 분들이 몇 계셔 아쉬웠다. 특히 폴더폰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어린이 분들 사진을 뽑아드리지 못한 게 정말 죄송했다.
내가 도착한 시점에는 이미 뱃지나 스티커 등의 굿즈는 다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타투 스티커만 붙여드리고 있었는데도 줄이 줄지 않았다. 사람들이 타투 스티커를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나도 굿즈는 티셔츠 빼면 받지 못했고, 지인 분들은 이미 카페로 피신한 상태라 못 본 것이 아쉽다. 내가 어느 부스에 있다고 밝히지 않기도 했지만은.
퍼레이드에 참가할 생각은 없어 3시부터 7시까지 봉사활동 신청을 했는데, 퍼레이드 중엔 오히려 거리가 매우 혼잡해져 줄 관리가 어려워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정리까지 도와드리고 작별 인사 후 퇴근했다. N님이 찾아와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쉬다 헤어졌다. 4시간을 땡볕에 서 있었더니 어질어질했는데 시원한 냉면과 티를 먹으니 좀 회복이 되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이 아팠다. 마스크 위쪽만 타서 투페이스가 되는 게 아니었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선크림이 제 역할을 해 줬다.
이벤트 호스트가 되어 없는 사회성을 그러모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건 처음이라 좀 재밌고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년에 또 참가할지는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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