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강남을 떠나며

juo 2023. 10. 10. 22:08

새 집의 입주 청소가 끝나 상태를 보러 와 봤다. 대체로 깔끔하지만 오래된 기물 사이사이에 찌든 때가 끼어 있는 곳이나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 있었다. 보통 이런 부분에 클레임을 걸어 다시 청소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는 편이 빠르고 덜 피곤할 것 같아 가져온 알코올 티슈로 구석구석 한 번 더 청소했다.

텅 빈 거실에 대자로 누웠다. 이제 정말로 2년간 살았던 강남을 떠나는구나. 편리하지만 막상 살기엔 썩 좋지 않은 동네였다. 그동안 느꼈던 점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 출퇴근: 강남에 집을 구한 첫 번째 이유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door to door로 걸어서 단 10분 거리다. 평소 밤잠을 잘 못 자는데 그나마 늦잠이 가능한 환경이라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음식점: 체인점 위주다. 가끔 핫플레이스가 생기긴 하지만 집 앞 식당에서 줄까지 서고 싶지 않아 오히려 가지 않게 된다. 사무실이 몰려 있는 역삼 쪽은 주말엔 대부분 문을 닫는다. 멀쑥하게 차려입고 놀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백수건달 차림으로 걷는 맛이 있다.
  • 담배: 골목마다 담배연기, 꽁초가 가득하다. 안 그래도 좁은 인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담배를 물고 있기 때문에 차가 없다면 차로를 이용해 걷는다. 집에서 나오면 최대한 빠르게 골목을 벗어나 테헤란로로 향한다. 흡연금지 표지판은 문에 붙은 “미시오”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 소음: 대로도 그렇지만 좁은 골목까지 차가 많다. 특히 퇴근 시간은 줄줄이 차와 오토바이의 행렬이 이어진다. 클락션 소리나 불법 개조한 듯한 머플러 엔진 소음도. 밤에 창문을 열면 욕하고 싸우는 소리, 술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이깨나 먹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고층이라 소리가 울려 뭐 때문에 싸우는지 잘 들리지 않아 신경 쓰인다. 특히 내 집 옆에는 자동차 공업사가 있어 더욱 시끄러웠다. 주거 지구에서 살지 않으면 이런 꼴을 겪어야 한다.
  • 교통: 기본적으로 차가 많고 특히 비싼 차가 많이 보인다. 배달 오토바이 또한 많다. 그 외 따릉이보다는 공유 킥보드가 많고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다. 헬멧은 쓰지 않는다. 강남경찰서는 다른 일로 바쁜지 딱히 단속하는 건 못 봤다. 대중교통의 중심지라 지하철과 버스로 삼성역 등의 주요 거점으로 이동하기 편하다. 하지만 평일 퇴근 시간엔 사람이 넘쳐나서 이용하지 않게 된다.
  • 공원: 근린공원이라고 있는 건 동네 뒷산이나 작은 놀이터 뿐이다. 애들을 본 건 손에 꼽고 주로 어른들만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공원다운 공원을 원한다면 한강공원이나 양재시민의 숲 정도까지 나가야 한다.
  • 유흥: 내 취향의 괜찮은 바가 별로 없어 주로 홍대까지 가서 마시고 왔던 것 같다. (비싼 돈 줘 가며 여자 바텐더와 하하호호 얘기하는 성격은 절대 못 된다.) 코인 노래방이라도 가려면 강남역까지 걸어야 한다. 그 외 놀거리가 정말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리 교통이 편하다지만 사람들이 왜 오는지 모르겠다. 영화관도 구색만 갖춘 수준이다. 전에 집 근처 샐러드집이 사실 성매매 업소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적발 안 된 비슷한 곳이 더 있을 거란 심증이 있다.

확실히 아이를 키우거나 사람 만한 곳은 되는 같다. 나름 정이 들긴 했지만. 새로운 지역은 고향에선 더 멀지만 살기 좋을 거라 기대해 본다.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짱 비싼 침대, 커틀러리 구입  (0) 2023.10.29
야유회  (0) 2023.10.22
인터넷우체국 내용증명 출력 오류  (0) 2023.09.19
여행 지도  (0) 202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