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짱 비싼 침대, 커틀러리 구입

juo 2023. 10. 29. 22:12

2023. 10. 28.

침대는 인간이 하루의 1/3을 보내는 중요한 가구다. 오피스텔에서 생활한 2년 간, 그리고 본가 벙커 침대에서 잔 몇 달간은 그냥 얇은 매트 위에서 잤고 나도 잠자리를 가리진 않지만(가리지 않고 잠을 못 잔다), 이왕 장만하기로 한 거 침대만큼은 인터넷이나 이케아 등에서 적당히 싼 제품을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 침대는 정말 너무나도 비쌌다, 너무나도. 때문에 내년 적당한 시기 여윳돈이 좀 모이면 살 생각이었지만, 시몬스에서 우리 회사 임직원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한다는 메일이 오고야 말았다. 언젠가 살 거라면 이 기회에 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TV를 아버지가 사 주시기로 되어 있었지만 “TV는 알아서 살 테니 (훨씬 비싼) 침대를 사 주세요”라고 말해 놓았다.

평생을 슈퍼싱글 크기의 침구에서 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리하려 했는데 회사, 친구, 가족 모두에게 상담을 받아 봐도 이왕 살 거 퀸 사이즈를 사라는 얘기뿐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은 자기 돈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다 쳐도 아버지까지 그렇게 말하시면.

T가 침대 매장에서 상담을 받는 건 따라가 구경한 적이 있지만 직접 상담받는 건 처음이다. 직원 분의 설명을 들으며 이런저런 매트 위에서 누워 있으니 잠이 솔솔 왔다. 나른한 오후여선지 매트가 좋아선지는 모르겠다. 그저 밤에도 이 정도로 잠이 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리 내 돈 나가는 것이 아니어도 너무 비싼 걸 사긴 좀 그렇다. 난 동생과는 다르게 죄책감 없이 비싼 물건을 마구 사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부모님께 무조건적으로 지원받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중간 정도 등급의 매트를 선택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어느 정도 편안했고. 그 “적당한”가격대도 이미 한참 비쌌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급 라인에서 소프트, 레귤러, 하드 타입의 매트를 한참 비교했어도 결국 결정하게 만든 주 요인은 가격이구나 싶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망설임 없이 상위 등급의 제품을 팍팍 지를 수 있을까.

여기에 프레임, 협탁, 베개, 커버 몇 장까지 더하니 할인을 받아도 엄청난 가격이 나왔다. 소파도 비싼 걸 샀다고 생각했는데 침대는 정말 상상 초월이다. 내 상식과는 다르게 정말 비싼 건 가전이 아니라 가구였다. 최첨단 전자제품보다 비싼 명품 주얼리, 가방을 볼 때마다 들던 느낌을 여기서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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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트레이더스에서 쿠폰을 사용해 리큐르나 좀 사 갈까 하고 스타필드에 들렀다. 하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부족해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바깥의 홈 데코 매장을 구경하다 보니 사고 싶었던 큐티폴 고아 커틀러리가 인터넷 가격보다 싼 값에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왜 나중에 사려고 했던 건 전부 지금 할인하는 건지!

내가 커틀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시애틀의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처음 본 장네론 라귀올 나이프의 곡선이었지만, 집에서 쓰기엔 큐티폴처럼 깔끔한 게 나을 것 같았다. 나이프의 형태도 예쁘고 젓가락이 있어 세트를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젓가락이 불편하다는 인터넷 의견을 많이 봤었는데 실제로 써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젓가락질 잘 못 하는 사람들의 불평이었던가. 손님용까지 생각해 수저, 포크, 칼, 티스푼을 4세트 구입했다. 뇌에 힘주고 버터나이프까지는 참았다. 우리 집이 무슨 양식 레스토랑은 아니니까.

월급 들어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거금을 연속으로 쓰니(침대는 돈이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다음 달엔 TV 거실장도 사야 테고 부산 여행과 연말 여행도 있는데. 그래도 입주 초반이니 이것저것 나갈 일이 많은 어쩔 없다고 생각하자. 좋은 사서 오래 쓰는 것이 옛날부터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스타일 아니었던가. 커틀러리에 해바라기씨유를 먹이며 그런 합리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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