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여름 밤

juo 2024. 8. 25. 20:38

2023. 8. 21.

책값을 조금이라도 아껴 보고자, 그리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동사무소(이렇게 부르는 편이 정감 간다)에 도서관이 있어 이어제 피아노 레슨 후 평소 읽고 싶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을 한 권 빌려 왔다. 자료실 이용은 대학생 때 이후 처음이라 책을 찾는 게 좀 힘들었다.

출근길에 첫 두 챕터를 읽었는데 마음에 들어 종이책으로 사 버렸다, 사고 싶었던 다른 책과 함께. 분명 처음엔 책값을 아끼려는 취지였는데 이게 맞나 싶다.

내일은 주문한 책꽂이가 드디어 온다고 하니 보관 공간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었다. 하지만 본가의 책들을 다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니 어떻게 엄선할지 고민이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에는 춘천으로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 공개방송을 보러 가야 한다. 나랑 취향이 맞는 한가한 친구가 단 하나도 없어 혼자 가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긴 편해졌다. 숙박비를 아끼고 긴 주말을 보내기 위해 금요일 건강검진이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숙소를 잡았다.

한 번 춘천에 훌쩍 떠날 계획을 잡으니 떠돌이처럼 혼자서 이곳저곳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남색으로 덮이고 별이 보일 때까지 운전하다 근처에 보이는 적당한 숙소에 묵는 거다. 약간은 외로우면서 세상과 멀리 떨어진 기분이 좋다. 왜 어른들이 낚시나 캠핑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계절에는 창문을 슬쩍 열어놓으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며 직접 겪었는지 아닌지 모를 향수에 빠져든다. 지금 누워 있는 곳이 한옥집 대청마루 또는 창호지가 있는 좁은 방이었다면 더 운치가 있었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 해남 외삼촌 댁이 민박집이 되기 전에 한옥이었던 것 같다. 지리산 이모 댁에서 잘 때도 전통 가옥의 창 밖으로 장대비가 내려 분위기가 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은 친척들과 별로 친하지 않아 정말 최근에는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절에 친척들을 보기 싫어하지만 난 너무 안 만나서 그런가 가끔은 찾아뵙고 싶은 생각이다.

예전에 어머니는 “원래 엄마아빠 돌아가시면 다 그렇게 된다”고 하셨다. 하긴 내 경우 조부모님이 전부 일찍 돌아가셔서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본가에 살 때는 동생과 집에서 만화도 보고, 가끔 여행도 가고 했는데. 이젠 둘 다 독립했으니 정말 명절이 아니면 얼굴 볼 일이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정말 남처럼 살겠지.

나이가 들면서 가까웠던 사람이 점점 떠나가기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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