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이상하게 눈이 쌓이질 않아 눈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저번 겨울에 만든 눈사람이 1년도 넘게 내 카톡 프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친구가 보곤 '눈이 없으면 눈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지!' 라고 해서 폭설이 내렸다던 강릉으로 떠났다.
청량리에서 새벽 기차를 탔다. 강릉에 뭐가 있다고 기차가 만석이라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쯤 가니 카페 칸이 어느 정도 비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선로 옆으로 쌓여 있는 눈이 우리를 반겼다. 옆으로는 바다가 있었다. 해변에 눈이 이렇게 쌓이다니. 바다-모래사장-눈이 같이 있는 풍경은 나름 신선했다.
해가 뜰 때까지 딱히 할 게 없었다. 바다를 좀 구경하다 눈밭에서 구르는 것밖엔.
눈이 두껍게 쌓여 얼어 있었기 때문에 그 위를 조심스레 걸을 순 있었지만 곧잘 발이 푹 빠져버리곤 했다. 신발에 눈이 들어가서 발이 시렸다.
그리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눈이 얼어서 도저히 뭉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겉눈을 좀 파내자 안쪽에 있는 눈은 물기가 조금 있어 뭉쳐진다는 걸 깨닫고 일단 덩어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굴려도 커지질 않는데다 발에 동상이 걸릴 것 같아서 그 동안 뭉친 덩어리에 얼어붙은 눈 조각을 머리로 삼아 급조했다. 이름은 하필 존슨이라고 한다.
존슨을 방치하곤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몸을 녹이고 오니 날이 밝아졌고 새해 첫 일출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너무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파도는 꽤 셌고 멀리 낮게 안개가 껴 있었다. 파도는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밀려와 난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구출하려다 발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바로 앞의 설렁탕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발을 좀 녹여야 했다. 관광지 바로 앞의 식당이라 그런지 맛은 우리 학교 학생식당에서 나오는 설렁탕에 비견될 만했다.
이제 할 게 없어져서 모래시계나 보기로 했다. 중학교 땐가 학교에서 한 번 와 봤다는데 도무지 생김새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은 잘 모르지만 일단 남쪽에 있다니 그 방향을 향해 걸었다. 찻길만 눈을 치워놓아 인도는 눈에 덮여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물 위엔 얼음 조각이 둥둥 떠 다니는 것이 곧 둘리가 떠내려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시계는 별 거 없었다. 하루종일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 모래를 일정량 아래로 내리는 듯 했다. 벌써 1년이 저 만큼이나 지나다니. 저걸 매일 보고 있자면 세월의 무상함이 잘 느껴질 것 같다.
버스로 강릉까지 왔다. 대중교통에서 자는 쪽잠이 가장 만족스럽다.
뭘 할까 돌아다니다 택시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눈이 많이 내려서 손님이 없던 차라 문을 연 가게가 몇 없었다. 조금 이르지만 점심 때가 되어 닭강정 1인분을 주문하고 건너편의 먹거리 골목에서 감자전과 전병 5000원 어치를 사 왔다. 무슨 풀로 장식했는지 모양이 예뻤다.
강정은 서비스가 들어갔나 1인분 치고는 많은 양이었다. 개인적으로 신포시장의 그것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한 친구는 감자전에 강정을 싸 먹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감자전에 강정을 싸서 드셔 보세요
볼거리에 집중하기보단 그냥 나들이 가듯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사카 여행 2일차 (0) | 2014.03.22 |
---|---|
오사카 여행 1일차 (0) | 2014.03.16 |
제주는 솔플 (3) - 아래쪽과 바닷가 관광지 리뷰 (0) | 2013.11.30 |
제주는 솔플 (2) - 위쪽 관광지 리뷰 (0) | 2013.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