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민이 많다. 대학교 4학년생이면 그럴 시기다. 진로 문제로 말이다. 보통은 UMC의 가사처럼 '4학년 1년 내내 커피를 들고 연봉 비교만 하는 속물'이 되어야 할 터인데 난 정작 별로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목표를 잡고 결국 컴퓨터공학과를 왔건만 막상 여기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겠다며 달려왔는데 사실은 하고 싶은 것을 모르고 있단 걸 깨달았다. 그러니 어느 대기업 인턴에 지원하려면 토익 스피킹이 필요하다느니, 어제 SSAT 시험을 봤는데 너도 빨리 준비하라느니 하는 소리에도 시큰둥하다. 한편 교수님들은 대학원을 오라고 권유하시는데 연구는 과연 나랑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남들 자소서 한 장이라도 더 들이밀려 노력할 때 난 고민만 하고 있다. 갑을 관계, 노조, 접대 등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너무 많이 들은 탓인가, 그 일원이 되는 것도 꺼려진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중간고사를 준비하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소식을 전해들을 당시에는 일이 이렇게 커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늘상 있는 사고겠지, 곧 구출되겠지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고 지금껏 숨어 있던 대한민국의 온갖 문제점들이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처음 며칠간은 사망자들과 그 주위의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은 사람들 생각에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엔 끝없이 드러나는 모순 투성이 사회의 추악한 모습에 치를 떨었다. 대체 우리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쿨한 척만 하며 현실이 이런데 어쩔 수 없다고 부조리에 순응했고, 정치는 저 먼 나라 얘기로 치부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연예인들의 '숨막히는 뒷태'에만 열광했으며, 돈밖에 모르는 저 사기꾼들에게 분노하면서도 결국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결국엔 이 사건도 나중엔 망각의 그늘에 덮여 우리는 결국엔 아무것도 배운 것도 바뀐 것도 없이 똑같은 부조리 속에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 높은 예상이 마음을 짓누른다.
세월호와 함께 새삼 드러나게 된 문제점 중에 하나는 일베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증오 발언과 문제 행동은 끊임없이 이슈가 되었고 내게는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간다는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이토록 슬픈 사건이 일어난 시기, 입에 담기도 뭣한 그들의 평소와 같은 언행은 더욱더 사람들을 분노케 하였다. 내 친구 중 일베를 하는 사람이 약 네댓 명 있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참았다. 남에게 뭐라고 하는 것 못하고 괜히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서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일베에 대한 혐오감이 탄젠트 곡선을 그리면서 그런 사이트에 한 몫 거드는 친구들의 행동이 견딜 수 없어졌다. 거기서 활동하는 친구의 경우는 간단하다. 연을 끊어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해악을 뻔히 알고도 그저 '다른 사이트에 비해 접근이 쉬워 정보를 얻으러 간다'는 친구에겐 뭐라 욕을 한 바가지 해 주고 싶었지만 끝내 참았다.
온갖 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몇 주간 대화하면서 웃다가도, 인터넷 게시판을 둘러보며 재미있어하다가도 갑자기 어지럽다. 원래 친구들이 부르는 술자리 마다하지 않는 성격인데 차마 무거운 마음을 들고 즐기러 가지를 못하겠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으며 대화한 적이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대신 혼자 술을 붓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들에 대한 기억 (0) | 2021.12.13 |
---|---|
첫 회사, 3년차 (0) | 2021.12.13 |
2019년 어느 날 셔플로 재생된 여행스케치를 들으며 (0) | 2019.04.26 |
종교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 (0) | 2014.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