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미용실 공포증

juo 2022. 11. 15. 01:31

2022. 11. 12.

“쉽지 않음”이라는 밈이 있다. 미용사에게 원하는 바를 말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다. 웃기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나 말고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혹은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중학생 때부터 미용실 가는 일은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야 “스포츠 머리” 외의 다른 스타일은 몰랐다. 하지만 유년기를 벗어나 접하는 미디어의 범위가 넓어지고 이 머리가 내 마음에 드는 머리가 아니었음을 자각하면서부터 고통은 시작되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두발규정은 항상 우리를 옭아맸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두발 자유화 얘기가 자주 나왔지만 결국 수능을 마치기 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꾸미고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혹은 어른들 따라 하지 말고 주제에 맞는 머리나 하고 다니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공부에 집중하진 못했던 것 같고 미용실 갈 시기가 가까워질 때마다 스트레스만 받았던 것 같다.

머리가 어느 정도 적당히 길면 슬슬 마음에 들었다가 금방 두발 단속에 걸릴 길이가 되고, 전전긍긍하며 지내다 큰 맘 먹고 미용실에 갔다 오면 다시 못생긴 상고머리로 돌아가고, 미루고 미루다 때를 놓치면 결국 걸려 매 맞고. 그 짓을 반복하다 못해 고3 때는 그냥 반삭을 해 버렸다. 이러니 미용실에 가는 일이 좋아질 리가 없다.

대학생이 되어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미용실은 어려운 장소였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어디를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어울릴지 잘 알고 있겠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처럼 미용실에서 세부사항을 요구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괜히 더 못생겨질까봐 “다듬어 주세요”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펌을 추천받아 몇 번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입대 전이나 전역 후로는 별 생각 없이 그냥 길렀다. 물론 어머니는 싫어하셨지만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니 오히려 편했다. 4학년 2학기 때는 취업 면접을 위해 기른 머리를 싹 잘라버렸다. 어머니는 “내 아들이 사람이 되었다”라고 하셨다. 남들과 똑같이 특징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긴 했다.

오히려 입사한 후로는 미용사 분께 이런저런 요구를 해 봤다. 하지만 어떤 스타일이 내게 어울릴지 찾아보는 것은 역시 귀찮은 일이라 어느 순간부터 다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해 이직 무렵에는 뒤로 묶일 정도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기분에 따라 펌을 하거나, 방치하다 결혼식 축가나 사회를 봐야 할 경우 짧게 치거나 하고 있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다시 충분히 길었다. 새로운 펌을 시도해볼까 했지만 이 달 지출이 좀 많았던 관계로 커트를 했다. 본가 동네 미용실의 두 배나 되는 서울 미용실 펌 비용은 아직 좀 부담스럽다.

이번에는 앞머리 숱을 쳐 달라고 했다. 아직 생각했던 것보다 숱이 많긴 했으나 이미 많이 쳐 낸 상태라 하시길래 더 치면 이상할까 봐 거기서 멈췄다. 안경을 벗으면 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추가 요구를 할 때마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데, 이 때문에 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자르고 나왔을 때까진 평범하게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집에 와서 다시 보니 뒷머리가 너무 길었다. 왜 가게 안에선 보이지 않았을까. 바로 J네 집들이를 가야 해서 내일 재방문하려 했지만 일요일은 과연 이 동네 가게답게 휴무일이었다. 이런 데 신경을 쓰는 과정 하나하나가 내겐 “쉽지 않음”이다. 게임처럼 머리 모양 미리 보기나 저장이 되는 게 아니니 역시 생각 없이 기르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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