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9.
부산을 가 본 적이 딱 세 번 있다. 처음은 창원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 처음으로 나온 외박이었다. 고맙게도 가족들이 인천에서 먼 길을 와 줘서 즐거운 이틀을 보냈다. 입대 후 처음으로 느낀 바깥 풍경이라 그런지 모든 가게가 맛집 같아 보였다. 두 번째는 대학생 때 JG와 떠난 자전거 여행이었다. 부산이 종착지였기 때문에 좀 놀다 갈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바로 다음날 다른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운대에 잠시 있다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올라갔다. 세 번째는 H누나랑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 공개 녹음 관람 겸 여행을 왔을 때였다. 출장으로 쌓여 있던 포인트도 털 겸 파크 하얏트에 투숙했는데 돈을 쓰지 않고 즐기는 고급 호텔은 정말 좋았다.
오늘은 네 번째 방문이다. 전에 터키(그 당시는 아직 튀르키예가 아니었다)—스위스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인 D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원래 JH와 JH의 동생, D 세 명이 모여 놀기로 했고 숙소도 다 잡아 놨지만 갑작스레 그 동생에게 일이 생겨서 대신 내가 땜빵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본가에 있다 비행기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항상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시지만 돈도 아낄 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익숙한 전 직장 출근길을 그대로 따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국내선이긴 해도 공항에 왔다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어딘가 멀리 떠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이동 중에 읽으려고 가져온 책 『우리편 편향』을 보다가 잠을 좀 자니 금방 도착했다. 귀여운 경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까지 전철로 이동했다. 중간에 벡스코 역을 지났는데 마침 지스타가 열리는 날이다. 이때 JY형이 아마 행사장 안에서 재밌게 관람하고 있었을 것이다. 역에서 빠져나와 D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JH 결혼식 때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순수한 친구다.
KTX를 타고 내려온 JH도 만나 청사포 쪽으로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주변에 예쁜 카페가 많았다. 구름이 잔뜩 꼈지만 바로 앞에 바다가 보여 시야가 괜찮았다. 큰 조개에는 네모지게 썬 버터가 올라가 풍미를 잘 살려 줬다. 저녁도 먹어야 하니 간단히 먹고 나왔다.
노래방에서 한 시간 놀다가 시장 쪽 번화가로 갔다. 벌써 번쩍번쩍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광장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다. 이 들뜬 연말 분위기가 좋다. D가 이자카야를 몇 곳 알아놨으나 역시나 토요일 저녁이라 너무 시끄럽거나 자리가 없었다. 한 곳에 대기를 걸어 놓고 달리 할 것이 없어 바로 옆의 호떡 가게에 줄을 섰다. 이상하게 줄이 길어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 관리하는 아저씨가 와서 혼잡하니 한 명은 저 쪽에 나와 있으라고 하셨다. 한 명 없다고 별로 덜 혼잡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냥 융통성없이 말하는 듯해서 그냥 그곳을 떠났다. 별로 먹고 싶어서 줄을 선 것도 아니고, 우린 세 명인데 굳이 한 명만 심심하게 멀리 있을 이유가 없다.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막걸리 펍을 발견해 구석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도 괜찮고 막걸리 종류도 많고 안주도 좀 비쌌지만 맛있었다. 남의 동네가 좋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시 부산은 맛집이 많은 느낌이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해운대 모래사장을 걸었다. 아무 것도 없는 시커먼 해변 옆에 대조적으로 빛나는 고층 건물이 있는 이런 풍경이 좋다. 저쪽에는 LED 조명으로 포토 스팟 겸 산책 코스를 만들어놓은 곳이 있었다. 왜 만들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김에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고 나왔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퍼런 조명이 일렁이는 모습에 빠져들게 된다.
숙소로 들어와 JH가 가져온 포트와인을 마시며 내가 가져온 보드게임 펭귄 파티와 요트다이스를 했다. 꼴등이 침대 가운데 자리에서 자기로 했는데, D가 초심자의 행운으로 요트를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JH에 비해 열세였지만 턱걸이로 상단 보너스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여 예상하지 못한 1등을 하게 되었다.
자기 전 남은 술을 홀짝이면서 과거 여행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추억을 되살렸다. D는 이 때가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너무 즐거워서 이후로도 여기저기 떠난 듯했고 우리랑도 다시 나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다시 같이 해외여행을 갈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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