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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의 전시기한

2022. 1. 7. 11월쯤 되면 거리와 가게에 빛나는 장식이 하나둘 생긴다. 순수하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려는 것인지 손님 유치를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위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어렸을 때와 다르게 선물을 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 시절의 관성 같은 것인지 아직 내게 겨울과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시기이다. 들뜬 기분도 들지만 동시에 왠지 쓸쓸하기도 하다.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을 하셔서 집에서 BMS 리듬 게임으로 캐롤 메들리를 치다 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뮤직박스의 멜로디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트리가 낡아서 버리기 전까지는 매년 집에서 트리를 장식했다. 한번은 선물 상자나 양말 모양 트리 장식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죄다 ..

쓰다 2022.01.10

The Stillness of the Wind, 노인의 삶, 나의 삶

2022. 1. 2. 새해 기념으로 예전에 사 둔 게임의 엔딩을 봤다. 2.5시간 남짓 걸렸고 재미는 없어 남들에게 추천하기는 뭐한 게임이다. 주인공 탈마는 시골의 외딴 농장에서 혼자 살고 있다. 주위를 좀 돌아다니면 알겠지만 주위에는 탈마의 어렸을 때 기억이 있는 돌더미와 버려진 장난감이 몇 개 있는 것 말고는 텅 비었다. 집밖으로 좀 멀리 나가면 카메라가 줌아웃되는데 그저 황량하다. 농장에서는 달걀을 얻고, 농사를 짓고, 염소젖 치즈를 만들 수 있다. 탈마는 노인이라 모든 움직임이 느리다. 그래서 하루에 할 수 있는 행동이 극히 제한된다. 정말 지루하다. 교류라고는 찾아오는 행상인과 물물교환을 하며 대화하거나 지인들에게서 편지로 소식을 듣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교류를 위해 하루하루 반복되는 노..

놀다 2022.01.02

2021년 회고

2021. 12. 31. 특별한 일은 없지만 2021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해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 키보드를 잡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보통 모임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초등학생 친구들이 아직 근처에 사는 고로 모이는 데 큰 부담이 없어 보통 10명 전부 참석하곤 했다. 그리고 약간 어두운 가게 안에서 테이블을 두세 개 붙여 앉아 내가 요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갓 따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거다. 정각이 되면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건배 후 다른 지인들과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고. 코로나 전까지도 이런 풍경이 당연했는데 모든 인원이 모이지 못하게 된 지 벌써 3년이다. 종종 소규모로는 얼굴을 보지만 친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역시 떠들석한 것이 좋다. 오랜만에 모두 모이는 ..

쓰다 2021.12.31

카우보이 비밥, 세련된 쓸쓸함의 표현

2021. 12. 26. 카우보이 비밥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지 1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감상을 완료했다. 워낙 좋은 평가가 많아서 각 잡고 보려 했는데 옴니버스 구성에 가까워 생각보다 가볍게 볼 수 있었다. 술 좀 마시면서 본 날은 더 재밌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하드 럭 우먼』이다. 상실을 표현하는 방법이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페이는 기억을 찾았으나 돌아갈 곳은 이미 없다는 것을 알고 옛 집터 땅에 (아마 침대가 있었을 위치에) 사각형을 그리고 눕는다. 제트와 스파이크는 동료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말없이 계란을 먹는다. 떠난 동료를 위해 차려놓은 몫까지도. 울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1차원적인 표현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로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 전체적으로 이..

쓰다 2021.12.31

잠이 안 오는 밤에는 독서를

2021. 12. 29. 늦은 밤이다. 이미 자야 할 시간이지만 잠은 안 오고 아무 의미 없이 하루하루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당장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시간이 늦어 뭔가 시작하긴 애매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간단히 게임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을 켠다는 행위 자체가 문턱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것 같다. 생각해보면 못 할 이유는 없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5분 정도 하다 조금만 힘을 내 읽다 만 책을 펼쳐보았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경향이 있는데, 전자책은 이동 중에 읽기 위해 아껴두는 편이다. 대신 종이책을 골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목이 멋져 보여서 산 책이다. 구입 당시 전자책이..

쓰다 2021.12.31

"핸드폰은 어느새 번호로 변한 기억들의 무덤"

2021. 12. 17. (제목은 이루펀트의 곡 『이사하는 날』 중) 이따금씩 카톡방 목록을 스크롤하면서 오래된 임시 단톡방과 볼일이 끝난 개인톡을 지워 나간다. 그러고 나면 고정 멤버들이 있는 방이 주로 남는다. 동아리 동기들, 직장 동기들, 스터디그룹, 초중고 친구들 등. 개중엔 몇 달 전부터 새 대화가 없는 방도 많다. 이 사람들과 기회될 때마다 다같이 놀러다닐 때도 있었는데 하고 옛날 생각을 해 본다. 꼭 코로나때문이 아니더라도 그전부터 자연스레 다같이 만나는 일이 점점 줄고 있었다. 나이가 들며 하나둘씩 애인을 만들고 결혼을 하면서 친구보다는 연애와 가정에 집중한다. 그렇게 대화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고 결국 나도 혼자 많이 말하기는 뭐하니 대화를 올리지 않게 된다. 흔히들 비혼주의자도 놀아줄 친..

쓰다 2021.12.18

A Bird Story, 어린아이와 동물 친구

2021. 11. 27. To the Moon의 후속작 Finding Paradise와 관련된 게임인 A Bird Story를 해 봤다. 이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초등학생 때 꿨던 꿈이 하나 생각나 기록해 본다. ‘가게가 다 문닫은 어두운 밤. 주황 가로등 빛이 비추고 있는 문방구점 입구. 푸른 조명이 빛나는 대형 수조가 있고 안에는 돌고래 비슷한 동물이 있다. 매일 보러 와서 나와 정이 많이 든 친구인데 내일 어딘가로 팔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 보는 것이 마지막이다. 유리에 손을 대고 울었다. 어른들의 사정 앞에서 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기만의 동물 친구와 서로 교감하고 싶다는 상상은 어렸을 적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지. 이 게임의 주인공도 마치 새와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놀다 2021.12.18

임대인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

2021. 12. 4. 상가 임대 계약 갱신을 하러 갔다. 코로나로 인해 월세를 인하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기존에 내던 이자와 세금, 그리고 오피스텔 임대차계약을 하면서 추가로 내는 이자가 한두푼이 아니었다. 이득을 보려고 구입한 상가니 이득은 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원래 5만원만 깎으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가서 얘기를 하다 결국 10만원까지 깎아드렸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이후로 이래저래 월세를 안 받거나 절반만 받거나 하긴 했는데, 향후 2년간은 상황이 좋아져서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다. 모든 상가주나 건물주는 이럴 때마다 안 된다고 칼같이 거절을 하는 걸까?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

쓰다 2021.12.13

앞으로 하게 될 김장의 횟수

2021. 12. 3. 김장을 도우러 휴가를 썼다. 본가로 가기 전 늦잠으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청소와 빨래를 끝내놓았다. 점심은 시들어가는 상추를 소비하기 위해 비빔국수를 해 먹었는데, 초장과 연두, 참기름을 대충 조합한 소스가 생각보다 맛있게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양파만 물에 담궈서 매운맛을 뺄 걸 그랬다. 본가에 도착하자 오후 3시쯤 되었다. 엄마께 작년 김치가 쓰고 맛이 없다고 했더니 동생도 똑같이 말했다고 한다. 김장이 힘이 드는 일이라 재작년부터는 친구분들과 같이 했는데, 배추가 너무 절여진 것 같기도 하다고. 그래서 올해는 직접 담그는 거라고 한다. 김치 속을 넣고 있는데 정수기 필터 점검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와서 아들이 여자보다 잘 넣는다고 말씀하신다. 옛날부터 김장할 때 종종 따라하곤 ..

쓰다 2021.12.13

13년만에 들른 외가

2021. 11. 13. 대학교 입학 전 친구들과 놀러온 이후로 처음으로 해남에 왔다. 제사 겸 사촌의 결혼식이 있다길래 간만에 한 번 와 보고 싶어서 주말을 반납하고 따라왔다. 친척들도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이렇게 오랜만에 봤는데도 외가 쪽 분들은 자주 봐 와서 친가 친척들보다 얼굴이 익숙하다. 오자마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제삿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 외가는 한번에 모여서 절을 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도착하는 순서대로 각각 한다고 한다. 이렇게 절을 올리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조부모들은 모두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돌아가셔서인지 죄송스럽지만 영정사진을 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렸을 적 해남에 왔을 때 마루에 앉아계시다 내가 인사하자 눈을 끔뻑거리시던 고조할아버지가 더 기억에 남..

쓰다 20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