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크리스마스 독일 음주 여행 4일차: 썰렁했지만 따뜻했던 로텐부르크

juo 2024. 4. 14. 23:33

남은 키쉬를 아침 삼아 먹고 나왔다. 여전히 해는 보이지 않았고 두꺼운 구름 아래로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역의 잡화점으로 들어가 물건을 구경했다. 해외여행 오면 시간이 남을 때 서점이나 이런 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오늘 일정은 로텐부르크 관광이다. 구글 지도의 안내대로라면 기차를 타고 도중에 Dombühl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한적한 역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DB Navigator 앱을 깔아서 검색해 보니 그 버스 정보가 없었다. 공지는 없었지만 어떤 이유로 오늘은 운행을 하지 않는 듯했다. 우버라도 탈까 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결국 앱에서 안내해 준 대로 기차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돌아간 후 새 경로로 로텐부르크까지 도착했다. 약 1시간쯤 늦어졌다.

12월 24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얼마 없었다. 지금이 대목 아닌가? 우리처럼 갈 곳 잃은 관광객이 좀 보였다.

다행히 Am Platzl이라는 열려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곧 브레이크 타임이지만 그냥 받아 준 걸지도 모르겠다. 옆 테이블에 가족들이 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는데, 꼬마아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보고 사장님이 주방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아이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저기 아기자기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이 놓여 있었다.

웰컴 푸드로 빵, 홈메이드 버터, 카레맛 나는 소스, 완두콩 수프가 나왔다. 이것만으로 이미 한 끼를 때운 느낌이 드는데 공짜라니. 먼저 검색했던 식당이 문을 닫아 여기로 온 것이 오히려 잘 됐다 싶은 맛과 서비스다. 메인 생선 요리도 괜찮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따님이 그린 태극기 사진이라며 벽에 붙은 그림(거꾸로 걸어놓은 것 같다)을 보여주신다. 한국 아이돌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물론 닫았고 기념품 가게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소품 가게는 모두 창에 불을 밝혀놓아 분위기만큼은 즐길 수가 있었다.

유럽 시골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만끽하며 거리와 성곽을 돌아다니다 놀이터를 발견해 2인 그네 비슷한 걸 발견해 둘이 흐아압 이야압 하며 열심히 탔다. 30대가 넘었지만 노는 건 어린애랑 다를 바가 없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로텐부르크를 나와 뉘른베르크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전부 닫은 상태였지만 아직 사람들이 아쉬움을 갖고 나와 있었다. 밤 10시는 된 느낌이지만 아직 18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맛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겠냐 싶었다. 하지만 열려 있는 식당이 거의 없으니 숙소 근처의 중국 음식점 Gourmet Tempel로 들어갔다. 리뷰를 보니 여기도 나름 고급스럽고 괜찮은 곳인 듯했다.

내부 장식은 휘황찬란했으며 벽에 어항도 있는 것이 돈을 바른 느낌이 철철 났다. 하지만 메뉴와 서비스가 실망스러웠다. 우선 전체적인 서빙이 매우 느렸으며 음식이 늦게 나온다. 주문한 딤섬 세트는 건조했고 밀가루 풋내도 났다. 밥과 같이 나온 오리 플람베가 그나마 맛있었다는 게 위안이다. 이런 곳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을 즐기는 독일인들과 우리가 불쌍했다.

맥주를 작은 걸 시켰는데 큰 게 나오질 않나, 서버가 우선순위를 모르는지 주문을 받기보다 테이블을 먼저 훔치는 등 엉망이었다. 팁 0원을 줘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맛집은 리뷰할 때 쓸 말이 많지 않지만 이런 가게야말로 글을 쓸 의욕이 팍팍 난다. 나중에 여행을 마치고 구글 지도에 작성할 리뷰에 들어갈 단어를 머릿속으로 고르면서 가게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