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170

루빅스큐브 입문

2022. 2. 10. 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루빅스 큐브를 가지고 노는 친구가 주변에 하나쯤 있었던 것도 같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커먼 플라스틱에 헤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싸구려 큐브를 적어도 한두 번 만져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머리를 쓰는 놀이는 영 싫어했기 때문에 별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계기 없이 루빅스 큐브를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이상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스피드 큐빙까지는 안 하더라도 원래대로 돌려놓는 법 정도는 알아놓으면 나쁠 것 없지 않을까? 마침 동생에게 요구할 생일 선물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꽤 유명한 브랜드에서 나온 GAN 큐브를 사 달라고 했다.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저가형으로 골랐다. 그 후 ..

쓰다 2022.02.10

자취요리 스타터 키트

2022. 2. 3. 설 연휴에 집을 오래 비우게 될 것이 정해지자마자 간당간당한 식재료는 모두 사용하거나 다듬어 얼렸다. 그리고 본가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만 먹었다.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집으로 돌아와 빈 냉장고를 보자 내일은 뭘 해먹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갑자기 밥 짓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떠올려보면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밥을 해 먹겠어”라 생각해서 조미료나 향신료 정도만 가져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이것저것 준비해 주신 걸 거절하긴 뭐해서 결국 다 받아 왔다. 기억나는 대로 써 보자면 얼린 대파, 쪽파, 간마늘, 고추, 애호박, 표고. 그리고 쌀, 된장, 고추장, 간장 3종, 다시포리, 배추김치, 파김치, 깻잎, 멸치볶음. 결국 버리게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쓰다 2022.02.05

시작은 그 사이트에서부터

2022. 2. 1. 설을 맞아 본가로 내려왔다. 사실 이 곳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다. 보통은 OTT로 못 봤던 영화를 보지만 이렇게 긴 연휴는 ‘우선순위가 낮지만 하고 싶었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해 볼 좋은 기회다. 그동안 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서 미뤄놨지만 언젠가 배우고 싶었던 프로그래밍 언어인 Rust를 조금 공부해 봤다. 친구들도 연휴를 심심하게 보내고 있는지 단체 대화방에서 알림이 심심찮게 울려댔다. 어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라이언 모양 스노우볼 메이커를 들고 눈밭을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보라, 이것이 동심 가득한 한국의 30대 아저씨다. 이렇게 눈이 올 줄 알았으면 오리 스노우볼 메이커를 오피스텔에 가져다놓지 않을 걸 그랬다. 나는 예의 ‘차 안에서 영화 보기’ 2회차 ..

쓰다 2022.02.03

전자책과 종이책

온전히 내 소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살다 보면 물건 하나를 집에 들이는 데에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언젠간 이사를 가야 할 순간이 올 테고 그 때 모든 짐을 빼기 위한 노력과 비용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본가에는 수많은 내 소유물이 남아 있다. 그 물건 중 책에 관한 얘기를 해 보자. 독서는 생각외로 부동산이 필요한 취미이다. 책은 무겁고 부피를 차지해 옮기기 번거롭다. 때문에 상기한 이유로 선뜻 사기가 어렵다. 본가의 책꽂이는 한 번 솎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책 위에 책을 쌓아놓은 과포화 상태인데,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이처럼 종이책을 사 읽었다간 나는 지금의 매트리스 대신 책 위에서 잠을 자야 할 것이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전자책을 사기 시작했다. 왜 최..

쓰다 2022.01.31

청소와 주말

2022. 1. 22. 토요일을 맞이해 청소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노동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좋은 기분 전환이다. 몇 평 안 되는 방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과 매트를 들추고 의자를 옮긴 자리 구석구석을 청소기로 민다. 틈새의 먼지도 빨아들여 준다. 한 차례 끝난 후엔 물걸레를 적셔 다시 바닥과 가구 곳곳을 닦는다. 독립하면서 청소기만큼은 좋은 것을 사기로 한 것은 확실히 잘 한 결정이었다. 평일 낮, 집에서 한창 일하고 있을 때는 사방에 널린 머리카락과 좁은 부엌 여기저기로 튀어 말라붙은 양념을 보면서도 방치하게 된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일을 재쳐두고 청소를 시작할 수도 있지만 당장 할 일이 쌓여 있을 때는 썩 내키지 않는다. 남은 일은 내일 마저 하기로 결정한 시각, 즉 퇴근 후는 이미 밤이 늦..

쓰다 2022.01.23

짧은 서울 산책

2022. 1. 16. 15시 좀 넘어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복도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봤다. 블라인드를 하루종일 쳐 놔서 몰랐는데 오늘은 날씨가 꽤 좋다. 평일에도 이틀 빼면 재택근무라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 주말에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보단 산책이라도 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이 근처는 빌딩으로 시야가 가로막힌 좁은 골목에 흡연자와 차들이 가득해 기분 좋게 돌아다닐 만한 장소가 못 된다. 근린공원이라고 있는 것은 동네 언덕에 흔한 운동기구를 몇 개 가져다놓은 수준이다. 지하철을 타고 좀 가면 선릉과 정릉이 있는데 볼거리는 없었던 것 같다. 강북으로 넘어가거나 전시관을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맛집이 있는 곳 주변을 대충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기도..

쓰다 2022.01.16

동인천 밤바다를 보면서 차 안에서 술과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파티

2021. 1. 8. J가 단톡방에 “영화를 보다가 자려는데 영화 셋 중에 하나를 골라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뭐 벌써 자”라고 말했고 J는 “놀아줘 그럼”이라고 답변했다. 생각없이 “동인천 밤바다나 보러갈까”라고 했는데, 그렇게 마침 심심해 보이던 Y까지 꼬셔서 얼렁뚱땅 ‘동인천 밤바다를 보면서 차 안에서 술과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파티’가 빠르게 결성되었다. 다른 둘은 임자 있는 몸이라 나올 상황이 안 되는 건지 답장이 없다. 예전에는 이런 모임이 있으면 모두의 일정을 조율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나도 일일이 따로 물어보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에 지쳤다. 그냥 언젠가부터 이 둘은 그냥 자주 못 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이 없으면 못 오겠거니 한다. 슬프지만 그들의 인생이 있는 거겠지. 과자..

쓰다 2022.01.10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시기한

2022. 1. 7. 11월쯤 되면 거리와 가게에 빛나는 장식이 하나둘 생긴다. 순수하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려는 것인지 손님 유치를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위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어렸을 때와 다르게 선물을 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 시절의 관성 같은 것인지 아직 내게 겨울과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시기이다. 들뜬 기분도 들지만 동시에 왠지 쓸쓸하기도 하다.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을 하셔서 집에서 BMS 리듬 게임으로 캐롤 메들리를 치다 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뮤직박스의 멜로디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트리가 낡아서 버리기 전까지는 매년 집에서 트리를 장식했다. 한번은 선물 상자나 양말 모양 트리 장식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죄다 ..

쓰다 2022.01.10

2021년 회고

2021. 12. 31. 특별한 일은 없지만 2021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해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 키보드를 잡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보통 모임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초등학생 친구들이 아직 근처에 사는 고로 모이는 데 큰 부담이 없어 보통 10명 전부 참석하곤 했다. 그리고 약간 어두운 가게 안에서 테이블을 두세 개 붙여 앉아 내가 요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고, 갓 따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거다. 정각이 되면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건배 후 다른 지인들과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고. 코로나 전까지도 이런 풍경이 당연했는데 모든 인원이 모이지 못하게 된 지 벌써 3년이다. 종종 소규모로는 얼굴을 보지만 친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역시 떠들석한 것이 좋다. 오랜만에 모두 모이는 ..

쓰다 2021.12.31

카우보이 비밥, 세련된 쓸쓸함의 표현

2021. 12. 26. 카우보이 비밥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지 1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감상을 완료했다. 워낙 좋은 평가가 많아서 각 잡고 보려 했는데 옴니버스 구성에 가까워 생각보다 가볍게 볼 수 있었다. 술 좀 마시면서 본 날은 더 재밌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하드 럭 우먼』이다. 상실을 표현하는 방법이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페이는 기억을 찾았으나 돌아갈 곳은 이미 없다는 것을 알고 옛 집터 땅에 (아마 침대가 있었을 위치에) 사각형을 그리고 눕는다. 제트와 스파이크는 동료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말없이 계란을 먹는다. 떠난 동료를 위해 차려놓은 몫까지도. 울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1차원적인 표현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로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 전체적으로 이..

쓰다 2021.12.31